온몸 근육 굳어져…숨쉬기조차 스스로 못해
전현수(가명'46) 씨의 눈은 초점 없이 허공만 바라본다. 온종일 침대에 누워 눈동자와 입만 움직일 수 있을 뿐 스스로 손끝 하나 까딱할 힘도 없다.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는 현수 씨는 지난해 말부터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 거동이 점차 불편해지더니 올해 초부터는 인공호흡기가 없으면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근육이 굳어졌다. "제 병이 지금 상태보다 더 나아질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때가 지금일 줄 꿈에도 몰랐어요. 남은 삶 동안이라도 주위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꿈 많았던 젊은 시절
현수 씨는 남들과 다름없이 꿈 많고 활발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대학교에서는 안경광학을 공부해 졸업 후 몇 년간은 안경원 직원으로 근무했다. 손님들이 좋아할 만한 훤칠한 외모에 성격도 서글서글해 늘 실적이 좋았다. 가게 주인에게 능력도 인정받아 다른 가게에서 현수 씨를 탐낼 정도였다. 그러다 종자돈을 마련해 현수 씨가 직접 가게를 운영해보겠다는 꿈이 생겼다.
하지만 돈을 빨리 모으고자 욕심을 냈던 것이 크나큰 실수였다. 현수 씨는 지인의 꼬드김에 화장품, 샴푸 등 생필품을 대량으로 사들였다가 되파는 방문판매에 뛰어들었지만 거의 팔지 못했고, 물건 구입비는 고스란히 빚이 됐다.
"다단계에 빠져 수천만원에 가까운 빚을 떠안으면서 제 인생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30대 초반에 신용불량자가 되면서 취직도 힘들어졌고 막노동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어요."
젊은 나이에 신용불량자가 된 현수 씨는 눈앞이 캄캄했다.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형제들의 연락은 스스로 피했다. 막노동을 하며 하루하루 버텨 나갔던 현수 씨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망가져 가고 있었다. 4년 전 일을 하러 나서는 순간 다리 한쪽에 쥐가 심하게 나면서 그대로 고꾸라진 것이다. 갑작스럽게 간 병원에서 '근이영양증'이란 진단을 들었다. 팔다리부터 시작해 온몸 근육이 하나하나 마비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가족이나 친척 중 근육병을 앓는 사람이 없었는데 억울하기도 하고 믿기지 않았어요. 힘들어도 빚만 갚으면 제 인생에 유일한 고비가 다 지나갈 줄 알았는데 모든 게 다 끝났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점점 심해지는 병세
근이영양증 진단을 받고 나서 처음 몇 년간은 현수 씨 혼자서 생활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스스로 휠체어를 타고 병원에 갈 수도 있었고 양치, 세수 같은 간단한 생활도 혼자서 해결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지내야 할 정도로 몸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앉아 있으면 호흡하는 근육에 지장이 가 벽에 기대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병원에서는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병세가 현수 씨처럼 급격히 악화되는 건 아주 드문 경우라고 했다.
"2년 전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충격으로 병세가 악화된 것 같아요. 어려운 형편으로 형제들과는 연락이 끊어졌어도 부모님은 제가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어요."
현수 씨는 기초생활급여와 국민연금 장애연금으로 받는 돈이 있지만 의료기기 할부금, 과거 진 빚에 대한 이자까지 매달 꾸준히 나가는 돈만 해도 수십만원이다. 국민연금공단이 지원하는 활동보조인이 현수 씨를 24시간 돌보긴 하지만 누워 지내는 환자를 이동시키기 위한 리프트를 사지 못해 지난 6개월간 목욕을 한번도 못했다. 욕창 방지를 위해 등, 엉덩이 밑에 깔아야 하는 냉패드도 교체 시기가 한참이나 지났지만 그대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아흔이 다 된 아버지께서도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 올해 들어 한 번도 못 뵈었어요. 제게 살 날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라도 그동안 폐만 끼쳤던 부모님께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허현정 기자 hhj224@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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