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자들이 죽였다. 그는 '사상범'이었고, 그의 죽음은 '정치적 타살'이었다. 그는 민주주의를 매우 싫어했다. 독재국가 스파르타를 이상적인 국가로 찬양하고 그다음이 과두정(寡頭政), 제일 못한 것이 민주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테네 민주주의자들을 대놓고 '덜떨어진 자들'이라고 불렀다.
민주주의를 싫어했으니 군중에 대한 생각도 고울 리가 없었다. 그에게 민중은 목자가 이끌어줘야 할 양떼였으며, 그 목자는 '다스리는 방법을 아는' 철인(哲人)이어야 했다. 그의 제자 플라톤이 구상한 '철인왕(哲人王) 국가'의 기본 설계도는 소크라테스가 마련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불온한 사상은 아테네 민주주의자들에게 매우 위험하게 보였다. 그가 기소됐을 당시는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들어섰던 30인 과두정권의 공포정치가 막을 내리고 민주정권이 들어섰던 때였다. 민주주의자들은 30인 과두정권 부역자(附逆者)들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대사면령을 내렸지만, 자신들을 '덜떨어진 자들'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소크라테스를 그냥 뒀다가는 공포정치가 부활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을 것이다. 30인 과두정권의 수장인 크리티아스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플라톤의 숙부라는 사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기소를 주도한 인물이 30인 과두정권에 대항하다 재산을 몰수당한 '민주투사' 아니토스라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인류가 발명한 최상의 정치체제라고 믿는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민주정 혐오는 당혹스럽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서는 철학자나 역사가들은 대부분 민주주의를 싫어했다.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도 그랬다. 그의 저서 '역사'는 그 이유를 보여준다. 1차 페르시아 전쟁 때 페르시아의 진군에 대항해 이오이아는 각 폴리스에 구원 요청을 했다. 결과는 스파르타를 전쟁에 끌어들이는 것은 실패했지만, 아테네는 쉽게 전쟁 참여를 설득할 수 있었다. 이를 두고 헤로도토스는 단 한 명의 스파르타 왕을 설득하는 것보다 만 명의 아테네인들을 설득하는 것이 더 쉬웠다고 아테네의 '데모크라시'를 비꼬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테네의 전쟁 참여 결정이 옳았냐 아니냐가 아니다. 대중은 귀가 얇다는 것, 이 때문에 민주정이 자해할 가능성은 상존한다는 경고만 읽어내면 된다. 대중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대중이, 그것도 결정적인 순간에 생각 없는 '떼거리'가 되기도 한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대중 민주주의는 쉽게 중우(衆愚)정치로 타락한다.
이를 그리스가 재확인해준다. 정치인은 재정이 멀쩡한 것처럼 장부를 분식(粉飾)했다. 이렇게 해서 낸 빚으로 복지 잔치를 벌였고 유로존에 들어가면서 부자가 된 것으로 착각한 국민은 이를 마음껏 누렸다. 그 달콤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은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말자'고 유혹한 좌파정권을 내세웠다. 그래도 파국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자 '배 째라'라며 나자빠졌다. 그리스인들은 환호했지만, 환호 뒤에 남은 것은 변한 것 없는 현실이 주는 환멸감뿐이다. 그리스의 요구대로 채권단이 부채를 일정 부분 탕감해준다 해도 여전히 갚아야 할 빚은 산더미다. 앞으로도 긴 시간에 걸쳐 빚 무서운 줄 모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다.
우리도 그리스를 닮아간다. 공무원연금 개혁 실패로 미래세대는 앞으로 70년 동안 1천654조원을 세금으로 바쳐야 한다. 나라 곳간 생각하지 않고 복지 천국을 만들겠다는 정치인의 선심공세도 계속될 것이다. 이미 지난 대선이 길을 텄다. 시작하기가 어렵지 일단 지르고 나면 다음은 쉽다. 다음 대선도 지난 대선과 같은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을까. "모든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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