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골목길 도시다]<13>언덕을 이어준 골목

입력 2015-07-14 05:00:00

연귀산 돌거북, 앞산의 강한 불 다스린 대구 수호신

대구를 낳은 언덕에 자리한 달성공원.
대구를 낳은 언덕에 자리한 달성공원.
청라언덕에서 산책하는 시민들.
대구 남구 이천동 수도산 언덕 99계단.
청라언덕에서 산책하는 시민들.
대구 남구 이천동 수도산 언덕 99계단.

클 대(大), 언덕 구(邱), 대구(大邱)는 하나의 큰 언덕(구릉)이다. 대구분지는 비교적 완만한 언덕지대로 구성돼 있다. 사람들이 곳곳의 언덕을 중심으로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이 대구의 시작이다. 골목길은 언덕과 그 주변에 놓인 마을에서 처음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후 언덕과 또 다른 언덕을, 그러니까 마을과 또 다른 마을을 연결하는 골목길이 하나 둘 놓인 것이 대구 골목길의 역사다.

◆대구의 뿌리 언덕, 달성

대구에서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하는 언덕이 있다. 지금의 달성공원 일대다. 이곳에는 달성토성이 지어졌다. 삼한시대 이래 이 지방에서 중심세력을 이루고 있던 집단들이 쌓았던 성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도시는 언덕에서 시작됐다. 흔히 도시를 포함한 문명은 하천 유역에서 발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하 유역에서 시작된 황하 문명과 나일강 유역에서 번창한 이집트 문명 등 교과서만 봐도 그렇게 적혀 있다. 물론 이것도 맞는 말인데,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다.

프랑스 건축가 에블린 페레 크리스탱은 "도시는 소통과 통행을 용이하게 하려는 문제 때문에 큰 강을 따라 교차점이나 항구 주변에 먼저 생겨났다. 그런데 하천 유역, 즉 땅의 끝에 먼저 자리 잡은 도시들은 점차 확장하며 내륙 쪽 언덕에 중심지를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한 예로 유럽 문명을 낳은 로마는 초기 테베레강을 둘러싸고 있는 7개의 언덕 위에 중심지를 만들었다. 도시가 자리 잡기 위해 하천과 언덕을 함께 필요로 했다는 얘기다. 달성도 마찬가지였다. 달서천은 달성 정문 앞에 흐르던 해자(성곽을 둘러싼 도랑)이기도 했고, 조금만 더 걸어나가면 금호강이 있다. 두 하천 유역에 있는 언덕에서 달성은, 그리고 대구는 출발했다.

물론 모든 도시가 하천 유역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언덕에서 출발하기도 했다. 방어에 유리한 언덕에 요새를 먼저 만들었고, 차츰 성벽을 넘어 마을을 확장해 나갔다는 얘기다. 하천 얘기를 빼놓고도 내륙의 언덕에 자리한 달성, 그리고 대구의 기원을 얘기할 수 있는 근거다.

◆대구를 지킨 언덕, 연귀산

대구를 낳은 언덕이 있다면, 이후 대구와 대구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해 온 언덕도 있다. 대구분지의 중심부에 있는 나지막한 언덕, '연귀산'이다. 서거정의 대구십경 시(詩) 중 하나인 '귀수춘운'을 살펴보자. '연귀산 흐릿하여 금오산 같은데, 무심히 피는 구름 또한 뜻이 있으리. 온 땅의 생물들이 바라는 바 있으니, 아무 뜻 없이 단비를 이루겠구나.'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쓴 매일신문 2009년 4월 25일 자 '[대구十景] ③거북산(연귀산)의 봄 구름'에 따르면, 이 시의 내용은 다른 대구십경 시처럼 풍광을 읊은 것이라기 보다는, 기원의 성격이 강하다. 당시 대구의 진산(고을을 지키는 산)으로 여겨진 연귀산을 바라보며 대구의 안녕을 기원했다는 것. 연귀산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곳으로 여겨졌는지를 보여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에 따르면, 사람들은 돌거북을 만들어 머리는 앞산이 있는 남쪽으로 꼬리는 팔공산이 있는 북쪽으로 향하게 한 다음 연귀산 산등성이에 묻어 지맥을 통하게 했다. 이는 특히 앞산이 지니고 있는 강한 불의 기운을 다스려 대구를 화마로부터 지키는 비보풍수의 성격이 강했다고 한다. 거북은 수신(물의 신)이라서 불을 제압하는 신으로 통용됐기 때문이다. 야트막한 언덕을 산이라 이름 붙인 것도, 그러고는 돌거북을 만들어 묻은 것도, 모두 향토애 넘치는 진산문화의 하나였다. 현재 연귀산 언덕에 있는 대구 제일중학교에 가면 돌거북을 볼 수 있다. 한동안 거꾸로 놓인 채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던 것을 2003년 11월 '달구벌 얼 찾기 모임'에서 바로 놓았다.

◆대구의 몽마르트르, 청라언덕

프랑스 파리 사람들은 도시 번화가의 번잡함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몽마르트르 언덕을 오른다. 이 언덕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에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파리 안에서 몽마르트르 언덕은 또 다른 세상이다. 몽마르트르 언덕 덕분에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야할 언덕이 대구에 있다. 청라언덕이다. 대구근대골목투어가 유명해진 이후로 관광객들의 발길도 많아졌지만, 인근 직장인 및 주민들이 점심을 먹고 찾는 휴식 및 산책 장소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청라언덕은 대구의 근대예술을 상징하는 언덕으로 먼저 평가받았다. '동무생각'을 남긴 대구 출신 작곡가 박태준의 노래비가 있다. 이 밖에도 청라언덕 및 그 일대는 작곡가 현제명, 시인 이상화, 소설가 현진건, 화가 이인성 등이 활동했고 또 언덕을 오르내리며 작품의 모티브를 얻은 곳이다. 역시 예술가들로 유명한 몽마르트르 언덕에 비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언덕의 매력, 계단길

언덕과 계단은 떼려야 뗄 수 없다. 몽마르트르 언덕의 계단이 언덕 일부로 기능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청라언덕으로 향하는 입구인 3'1만세운동길 90계단도 청라언덕의 일부로 역할을 한다. 계단은 본래 이동을 위한 움직임을 요구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졌지만, 점차 머무르고 또 휴식하는 공간으로 변화해 온 역사를 갖고 있다. 요즘 이곳 90계단에 가보면 계단을 걷는 사람들의 수만큼 잠시 멈춰 서서 사진을 찍거나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언덕과 계단이 조화를 이루는 명소는 대구 남구 이천동에도 있다. 연귀산 만큼 낮은 언덕인 수도산의 한 주택가에 있고, 최근 벽화가 덧입혀져 유명해진 99계단이다. 계단을 모두 오르면 조용한 분위기의 도심 속 사찰, 서봉사가 나온다. 역시 계단을 힘들게 오르면 대구제일교회가 나오는 청라언덕과 비슷한 맥락의 장소다.

99계단은 1960년대에 대구상고 럭비부 부원들이 뛰어오르며 체력 단련을 한 곳이기도 하다. 비슷한 사연이 있는 계단으로 대구 중구 대신동 언덕에 세워져 있는 계성고등학교의 50계단이 있다. 1980년대에 계성고 유도부 부원들이 새벽이면 부리나케 와서 뛰며 체력을 기르던 곳이다. 종종 이곳에서는 체력테스트가 열렸는데, 합격하지 못한 부원들은 유니폼을 벗어야 해 '눈물의 계단'으로도 불렸다. 이 50계단을 발판 삼아 계성고 유도부는 1980년부터 1982년까지 3년 동안 16개 전국대회 단체전을 모두 석권하는 전성기를 누렸다.

글 사진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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