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 사태, 박근혜 리더십 바닥 보인 꼴
과거 黨 민주주의 확립한 모습과 달라
지휘자 빠진 새누리 내년 총선 안갯속
4선 행보 따라 정치 지형 영향 미칠 듯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음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의 6월 25일 발언으로 촉발된 새누리당 내분 사태는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 의원은 원내대표로 당선되고 얼마 되지 않아 국회에서 연설을 하면서 자신이 평소에 갖고 있던 철학을 이야기했고 언론은 이를 크게 보도했다. 하지만 평소에 유 의원을 잘 알고 또 좋아하는 필자는 "왜 저런 이야기를 할까" 하고 내심 걱정을 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등 유 의원의 말은 맞는 이야기이지만, 그것은 "박근혜정부의 정책은 허구이자 실패"라고 여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연설한 형상이기 때문이다.
사실 박근혜정부는 위기관리는 물론이고 정책에서도 이미 실패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변변한 정책도 세워 보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박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국민 다수로부터 지지를 상실해 버렸다. 실제로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계층은 대구'경북권과 60세 이상 노년층으로 국한돼 있다. 국민과의 공감 능력을 상실하고, 자신의 각료와 수석비서관과도 소통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내걸었던 공약을 대부분 파기해 버린 대통령이 신뢰를 얻을 수는 없다. 신뢰를 상실한 정권은 강압과 강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유승민 사태도 이런 맥락에서 벌어진 불상사이다.
오늘날의 박 대통령을 만든 세력은 '범친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집단이다. 하지만 오늘날 박 대통령을 호위하는 '친박'은 매우 협소한 집단에 불과하고, 김무성 대표나 유승민 의원 같이 오랫동안 박 대통령을 알아왔던 무게감 있는 사람들은 대통령과 거리를 두거나 비판자가 되고 말았다. 그 결과는 당내 선거에서 그대로 반영됐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친박은 친박 인사도 아닌 김황식 전 총리를 밀었으나 정몽준 전 의원에게 맥없이 졌고, 국회의장 선거에선 친박이 미는 황우여 의원이 정의화 의장에게 참패했고, 당 대표 선거와 원내대표 선거에선 김무성 의원과 유승민 의원이 친박이 미는 서청원 의원과 이주영 의원을 가볍게 물리쳤다.
연초에 있었던 김무성 대표의 수첩 메모 사건은 김 대표와 유 의원, 그리고 대통령 주변세력과의 관계가 심상치 않음을 잘 보여 주었다. 김무성 대표는 언론으로 하여금 문제의 'K, Y'를 추적 보도하게 하여 '십상시'라고 불리는 청와대 세력에게 타격을 주었다. 이번 유승민 파동에선 유 의원뿐 아니라 김 대표도 직격탄을 맞았으니 연초의 'K, Y' 수첩 메모가 부메랑이 된 모습이다.
이번 사태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은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리더십이란 문자 그대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지 명령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와 정당을 보는 시각이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를 지내면서 원내대표를 의원들이 직접 선출하도록 하고 전당대회와 대통령 후보 경선 룰을 정비하는 등 당내 민주주의를 확립시켰다. 그러나 유승민 사태에서 나타난 박 대통령의 모습은 정당 민주주의를 확립시킨 과거와는 너무나 다르다.
유승민 사태의 파장은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총선을 9개월 앞둔 새누리당은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내년 총선을 누가 지휘할지도 알 수 없고, 어떤 정책 방향을 내걸지도 불확실해졌다. 유 의원을 향해 저주의 언어를 쏟아낸 친박 의원들의 운명도 관심거리다.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이 계속 지리멸렬하기만 기대하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정치인 유승민은 이제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됐다. 유 의원은 원내대표직을 사퇴하면서 박 대통령이 헌법 제1조가 천명하고 있는 민주공화국 원칙을 저버리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보다 큰 정치를 해서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고 선언했다.
유 의원이 이 같은 소신을 어떻게 구현해 나갈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말았다. 유 의원이 내년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에서 4선에 나서면서 당내 비판세력의 구심점으로 남을지, 아니면 아예 새로운 정치지형을 만들어 가면서 한국정치 자체를 바꾸는 담대한 도전에 나설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어느 길을 가든 간에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유 의원의 행보에 따라 1990년 3당 합당으로 굳어진 양당 체제 자체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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