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법의 소급 적용

입력 2015-07-06 05:00:00

태평양전쟁 일본 전범을 처벌한 극동국제군사재판(일명 도쿄재판)의 권한과 기능을 명시한 것이 1946년 1월 19일 맥아더가 발표한 '도쿄 헌장'이다. 이 헌장은 전범을 처벌하기 위한 범죄로 '평화에 반한 죄' '통상적 전쟁범죄' '인도에 반하는 죄' 등 세 가지를 명시하고 이들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에 관련된 개인을 처벌토록 했다.

이 중 가장 논란이 된 것은 '평화에 반한 죄'로, 변호인 측은 '소급 적용'이라고 주장했다. 도쿄 헌장은 '평화에 반한 죄'를 구성하는 항목의 하나로 '침략 전쟁'을 들었는데 변호인 측은 이를 문제 삼았다. "'침략 전쟁'은 그 자체로 불법이 아니며 국가정책 수단으로 전쟁을 부인하는 1929년 파리 협정도 전쟁 범죄의 의미를 확장하거나 전쟁을 범죄로 성립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2차 대전 추축국(樞軸國)이 패배하기 이전엔 국제법에 존재하지 않았던 범죄이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기소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만약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법리적'으로는 합당할지 몰라도 정의(正義)는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소급 적용을 금지하는 이유는 법적 안정성이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의다. 이들 두 가치가 충돌할 때 어느 쪽에 서야 하는가?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법리(法理) 때문에 정의가 실현되지 못한다면 과연 무엇을 위한 법리인가라는 회의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제2연평해전 사망자를 '순직자'에서 '전사자'로 격상하는 법안의 입법이 불발됐다. 국방부의 반대 때문이다. 이들 법안의 골자는 제2연평해전 사망자들에 대한 보상금을 '현실화'해 소급 적용하는 것이다. 국방부의 반대 논리는 법안이 통과하면 과거 모든 전투 희생자들에게도 소급 적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 얘기하면 아직도 많은 전몰자가 전사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부조리한 현실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다.

과연 이런 나라를 위해 총을 들어야 하는지 깊이 회의하게 하는 단견이다. 과거 모든 전투 희생자들에게 소급 적용해 보상할 때 필요한 경비는 약 550억원이라고 한다. 큰 액수 같지만, 국방부 예산의 0.1%밖에 안 된다. 그 돈 때문에 국가를 위해 희생한 전몰자에게 합당한 예우를 할 수 없다면 '국방의 의무'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소급 적용 금지는 결코 철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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