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풍류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풍류란 말은 '삼국사기' 진흥왕조에 화랑제도 설치에 관한 기사에서 처음 나왔다. '삼국사기'의 기록대로면 신라시대 당시에 있었던 현묘지도(玄妙之道)가 곧 풍류인데, 이는 인간이 하늘과 하나가 돼 많은 사람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서양문화가 들어오고 정신보다는 물질을, 인격보다는 능력을 중시하는 풍조가 퍼지면서 우리의 풍류는 위축되었다.
이미 세태는 의'식'주 기본환경부터 심미적 취향을 살리기보다 기능적으로 편리하고 활용도가 높은 것을 요구한다. 하루의 일과도 바쁘게만 돌아가게 짜여 있다. 그래서 여유라든가 정신적 가치가 우리의 생활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고 조금 여유가 있는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과거와 다른 형태의 풍류가 대두하고 있다. 우리의 욕구가 물질적인 것을 넘어서 문화적인 것으로 옮겨가고 있다. 예술에 대한 향수가 커지는 것이다.
◇"환자들과 그림 나누며 감성도 나눠요"
◆행복을 선물하는 의사-박우성 수성치과 원장
"그림을 그리며 얻는 행복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습니다."
박우성 수성치과원장은 행복을 서비스하는 치과의사다. 1995년 개원 이후 오랫동안 환자들에게 자신이 캔버스 10호에 직접 그린 유화, 아크릴화 등을 선물해왔다. 이는 처음 개원할 때부터 계획했던 일이었다. 박 원장 본인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환자와 문화를 나누면서 감성도 어루만지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병원 운영 철학 때문인지 실제 그의 병원은 작은 화실을 방불케 한다. 자신이 진료하는 의자에서 바라본 병원의 일상을 그린 그림, 아이를 진료하는 박 원장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 등 병원 여기저기에는 박 원장의 손때가 묻은 작품이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고 순수한 터치. 그의 그림 이력이 궁금하다.
박 원장은 "어릴 때 공부는 뒷전이고 그림에 미쳐 있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미대 진학을 꿈꾼 적도 있었지만 치기공사였던 아버지는 장남이 치과의사가 되길 바라셨다. 그 뜻을 따라 치의대에 진학했다"고 밝혔다.
유급이 난무하는 팍팍한 치의대 생활에서 박 원장의 숨구멍은 그림이었다. 박 원장은 강의가 끝나면 미술에 탐닉했다. 경북 의성에서의 공중보건의 생활 3년은 그에게 자연을 그릴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림에 대한 오랜 열정 때문일까. 단골 화방 주인의 권유로 1998년 출품한 공모전에서 입선하기도 했다. 또한 박 원장은 '월간 미술세계'가 선정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현대 미술작가 2천222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1999년에 사비 1천만원을 들여서 대백프라자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대학 선배가 그림 한 점 사준 것 말고는 지금까지 돈 받고 그림을 팔아본 적이 없어요.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공유하는 게 풍류라고 생각해요. 그림 그리고 혼자 만족하는 건 진정한 풍류가 아니죠"라며 웃었다.
◇"형사가 거칠다고요? 멋과 흥도 안답니다"
◆음악에서 찾은 삶의 여유-김판태 대구 남부경찰서 수사과장
흔히 형사라고 하면 거친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음악을 통해 풍류를 즐기며 감성을 나누는 경찰이 있다. 주인공은 바로 김판태 대구 남부경찰서 수사과장.
김 과장은 색소폰 마니아다. 그의 색소폰 사랑은 2011년부터 시작됐다. 평소 산행을 즐기는 김 과장은 당시 주말을 맞아 경북 문경새재 옛길을 걷고 있었다. 한창 구슬땀을 흘리며 걷던 중 어디선가 아름다운 선율이 들려왔다. 김 과장은 사이렌의 노랫소리에 매혹당한 뱃사람처럼 멜로디를 따라갔다. 소리를 찾아간 곳은 허름한 식당. 식당 주인이 앞치마를 두르고 앉아 색소폰을 불고 있었다. 김 과장은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여 '나도 꼭 색소폰을 배워 멋지게 연주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 김 과장은 그날의 다짐을 이뤘다. 지난달 29일 오전 10시 30분 남부경찰서 4층 강당에서 있었던 동료 직원 퇴임식 2부 순서 무대에 올라 동료 경찰 150여 명 앞에서 공연했다. 김 과장은 2013년부터 고향 친구 7명과 색소폰 동호회를 결성해 활동 중인데, 매년 연말에 그해 모은 회비로 고향인 경북 청도에 있는 청도문화원을 빌려 지역민들에게 음률을 들려준다. 지난해 여름에는 청도의 색소폰 동호회 6곳과 함께 관객 600여 명 앞에서 합동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김 과장은 "많은 관객 앞에서 공연하려면 맹연습을 해야 해 좋은 자극제가 된다"며 "지금은 조직에 매인 몸이지만 내년이면 우리 회원 모두가 퇴직한다. 퇴직해서 요양원, 양로원 등에 색소폰 공연 봉사활동을 다닐 계획이다"고 말했다. 색소폰 불 때가 가장 즐겁다는 그는 "예전에는 폭음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색소폰을 시작하면서 술에서 찾을 수 없는 멋과 흥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색소폰을 통해 수사 경찰의 삭막한 삶에 감성은 올리고 스트레스는 줄일 수 있어 동료에게도 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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