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 놀 줄 모른다고요? 미국보다 훨씬 놀기 편해요"

입력 2015-07-04 00:54:58

외국인이 본 한국의 놀이문화

브라이언 밴하이스(37. 외국인 대상 잡지
브라이언 밴하이스(37. 외국인 대상 잡지 '대구 캠퍼스' 편집장)
데이븐 알렉산더 퍼부시(29. 영어강사)
데이븐 알렉산더 퍼부시(29. 영어강사)

어떤 '환상'과 '편견'이 있다. 외국에는 우리나라보다 더 놀 곳도 많고 놀거리도 많다는 환상. 외국 사람들은 워낙에 여가문화가 발달돼 있어 우리나라에서 놀려면 꽤나 심심해 할 거라는 편견. "고기도 먹어본 자가 맛을 안다"고 했던가. 마음 편히 놀아본 적 없이 경제성장을 위해 달려온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소위 말하는 선진국의 여가 생활은 "선진국은 오래전부터 일과 놀이의 균형을 맞춰왔다"는 생각 때문에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이 있다.

대구에 살고 있는 외국인 2명을 만나봤다. 두 사람 다 미국에서 왔는데, 데이븐 알렉산더 퍼부시(29) 씨는 대구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며 많은 한국 사람을 만나 놀았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 '대구 컴퍼스'의 편집장 브라이언 밴하이스(37) 씨는 4년 동안 대구를 비롯한 한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한국인과 놀기도 했다. 이들은 "'한국이 놀 데가 없고 한국 사람들이 못 논다는 말'이 와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한국이 놀기 편하다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훨씬 잘 놀고, 놀 곳도 한국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의외의 답이었다. 우리가 "놀 데가 없어" 또는 "놀 거리가 없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의 놀이 인프라에 만족하는 의견을 보였다. 퍼부시 씨는 "미국이 오히려 심심하며 갈 데가 없다"고 말했다. 이유인즉슨, 한국은 사람들이 사는 곳 근처에 박물관, 카페, 술집 등 놀고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은데 미국은 놀 만한 곳들이 멀리 떨어져 있고, 또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노는 분위기인 탓에 친구가 주변에 안 살면 뭘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퍼부시 씨는 "일단 노는 곳까지 갈 수 있는 대중교통이 너무 잘돼 있고 물가도 미국보다는 저렴한 편"이라며 "한국이 놀기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퍼부시 씨는 "나는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영화 보러 가거나, 술집을 찾기에 노는 장소나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는 미국에 없는 '노래방'이라는 놀이 공간이 있기에 더 재미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의 밤이 다른 나라보다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도 외국인이 한국에서 놀기 좋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 밴하이스 씨는 한국인들이 동네 술집에서 밤늦게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분위기를 부러워했다. 미국에서는 동네에서 밤샘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밴하이스 씨는 "미국은 음료 한 잔 시켜놓고 카페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을 실례로 여기고, 대중교통이 끊겨 밤을 새워야 한다면 결국 기차역 같은 데서 버틸 수밖에 없다"며 "밤새 놀아도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은 그만큼 '나이트 컬처'가 잘 형성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밴하이스 씨가 극찬한 한국의 노는 문화 중 하나가 '맛집 찾아가기'였다. 밴하이스 씨는 "처음에는 칼국수 한 그릇 먹으러 차 타고 1시간 이상 가는 분위기를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 되더라"고 말했다.

◆끼리끼리 놀아 재미없는 것일 수도

한국이 놀기 좋은 곳이라는 데 쉽게 수긍이 가지 않아 "한국 사람들과 놀아보니 어땠는가"라고 질문을 바꿔봤다. 이 질문에 밴하이스 씨는 자신이 한국에 오기 전 미국 괌의 한 리조트에서 일할 때 이야기를 들려줬다.

"괌이 유명한 관광지다 보니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오죠.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특징이 있어요. 무조건 자기들끼리 놀아요. 패키지 투어로 왔든 자유 여행으로 왔든 자기들끼리 뭉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해요. 리조트에 여러 프로그램이 있어서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리조트에 있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같이 해 보지 않겠느냐'고 하면 슬금슬금 발을 빼더라고요."

퍼부시 씨도 한국인과 놀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브레이킹 디 아이스'(Breaking the ice), 즉 처음 만났을 때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같이 어울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퍼부시 씨는 "한국 사람들과 놀 때 서로 아는 사람이 없으면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문제는 이런 '끼리끼리 놀기' 문화를 외국인들에게까지 강요하는 데서 발생한다. 퍼부시 씨는 "어색함을 깨고 계속 친해지기 시작하면 오히려 나의 취향도 자신들에게 맞추기를 강요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부분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곳이 바로 술자리다. 무조건 '건배'와 '원 샷'을 강조하고, 마시기 힘들어 술잔을 내려놓으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 등 개개인의 취향과 시선을 존중하는 문화가 부족하더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밴하이스 씨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도 있는데 한국 친구들은 그런 걸 '우울증 있냐'는 식으로 이상한 시선으로 보더라"며 "한국인들은 단체로 뭘 하는 걸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다. "혼자 놀면 무슨 재미냐"는 한국인의 인식과 달리 외국인들은 혼자 놀면서도 상대방의 다양한 '노는 방식'을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어느 정도 돼 있었고 그렇게 새로운 놀이 방식을 만들어내기도 했던 것이다.

맨 처음에는 "외국 사람들이 잘 노는 이유는 그만큼 놀 데가 많아서"라는 생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놀 수 있는 공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노는 사람이 얼마나 재미있게 놀 마음으로 뭔가를 하느냐에 달린 것이었다. 거기에 타인을 존중하는 여유와 배려가 더 합쳐진다면 우리라고 외국인들이 즐기는 것만큼 놀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으랴.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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