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행복한 도시] 8)일본 고베서 배우는 대지진 교훈

입력 2015-07-03 05:00:00

"재해 대비해 피해 줄이자"…초·중·고 학년별 안전·방재 교육

지난달 12일 인간과 방재미래센터로 견학을 온 학생들이 전시실에서 지진 피해자들이 기증한 물건들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달 12일 인간과 방재미래센터로 견학을 온 학생들이 전시실에서 지진 피해자들이 기증한 물건들을 살펴보고 있다.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 46분. 모두가 잠든 새벽 일본 고베시 일대가 쑥대밭으로 변했다. 14초의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지진은 수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지진을 감지해 대피할 시간도, 손써볼 틈도 없이 희생자 대부분이 집 안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최대의 피해를 기록한 고베대지진은 일본 사회 제도 전반과 시민 의식 등 모든 것을 바꿨다. 성장과 효율성만 추구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반성하고 재해 피해를 줄이고 예방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참혹했던 고베 대지진

히타우타코(69) 씨는 20년 전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아파트 4층에서 살았던 그는 자다가 천둥과 번개가 치는 것 같은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바닥과 벽은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고 방 안 모든 가구와 물건들은 자신의 몸을 뒤덮고 있었다. 지금은 인간과 방재미래센터에서 관람객들에게 안전수칙과 본인의 체험담을 알려주는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제가 살았던 아파트 1층은 폭삭 주저앉아 형태가 완전히 사라졌을 정도였습니다. 살려달라고 계속 소리를 지르다가 넘어진 가구들 틈을 비집고 바깥으로 겨우 탈출했는데 밖에서 본 피해 상황은 더 끔찍했어요."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된 고베대지진은 효고현 고베시를 중심으로 반경 100㎞에 걸쳐 피해를 줬다. 리히터 규모 7.2의 강진으로 고베에서 약 480㎞ 떨어진 도쿄에서도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도심 외곽에는 지진에 약한 노후 주택이 많았던 것도 희생자를 키웠던 점으로 지적됐다. 얇은 벽과 기둥으로 무거운 기와를 견디도록 설계된 일본 전통주택은 강진에는 버티기 힘들었다. 목조 재질로 된 주택이 많아 지진 후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도 컸다.

이 지진으로 6천434명이 목숨을 잃고 고베시민 4만3천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당시 고베시에 살고 있던 한국 교포들도 500여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10만 채가 넘는 주택이 붕괴돼 2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지진이 강타한 지역에는 일본 대기업들의 주요 산업시설과 항만이 밀접해 있어 경제적 피해도 컸다. 재산피해는 1천400억달러로 당시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2.5%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지진이 발생한 후 며칠간은 교통과 통신수단도 마비돼 복구가 더욱 늦어졌다. 고베시청의 한 층이 내려앉았고 효고현청 건물도 붕괴돼 중앙정부에 피해 규모나 상황을 전달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고베시에서 오사카, 교토 등을 잇는 고속도로도 무너지고 기차역들과 선로도 파괴됐다.

하야시 미요카즈 인간과 방재미래센터 운영과장은 "바다와 인접한 지역이라 태풍, 홍수 등에만 대비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 누구도 재해로 도심이 공격받을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며 "건물이나 도로에 대한 내진 설계 규정이나 재해 발생 시 대피 매뉴얼도 없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일본 전반에 불러온 안전의식

고베대지진이 일어나기 4년 전인 1991년 일본 정부가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식조사에서 '10년 내 대지진이 올 것 같다'고 대답한 시민은 8%에 불과했다. 고베시민들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시민 의식뿐만 아니라 제도 등에서도 안전 규정이 허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진에 견디도록 설계된 건물은 거의 없었고, 차량이나 기차를 운행하다가 지진이 났을 때 승객을 대피시키거나 다른 곳으로 우회시키는 등의 재난 대비 매뉴얼도 없었다.

하지만 대지진으로 인한 참상을 겪고 난 뒤 일본의 안전문화는 180도 바뀌었다.

수년간에 걸쳐 자원봉사자들과 관공서, 주택 건설 등의 피해 복구에 힘쓰는 한편 기존의 안전의식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안전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해 초'중'고등학교 학년별로 익혀야 할 안전'방재 교과서가 제작됐다. 정규 교육과정, 공익광고 등으로 시민들 사이에서 '집 안 가구를 천장 높이와 비슷하게 맞춰 지진으로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게 해야 한다' '주택에 사는 주민이라면 잠은 가능하면 2층에서 자 건물 붕괴로 인한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등의 안전수칙도 상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지진이 발생한 뒤 지금까지 고베시 히가시유원지 공원에서는 매년 1월 17일 지진이 일어난 시간에 맞춰 수천 명의 시민들이 모여 묵념과 촛불로 희생자를 기리고 있다.

코우지 마츠바라 인간과 방재미래센터 부센터장은 "고베대지진 이후 효고현을 비롯해 전 국가적으로 방재, 감재(減災) 같은 용어가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며 "'재해는 피할 수는 없지만 예측하고 대비해 줄여야 한다'는 안전 의식이 생겨났다"고 했다.

일본 고베시에서 글'사진 허현정 기자 hhj224@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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