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용산참사' 테마, 약자 눈으로 본 세상"
배우 윤계상(37)의 도전정신은 인정할 만하다. 발레복('발레교습소', 2004)을 입었고, 술집에서 여자를 상대하는 호스트('비스티 보이즈', 2008)로 변신했으며, 에로영화 감독의 일반 상업영화 도전기('레드카펫', 2014) 등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스크린에서 인사했다.
하지만 그의 잘생긴 외모에 샘을 내서인지, 작품 운이 없는지 흥행과는 거리가 먼 배우가 됐다. 인기 아이돌그룹 god 멤버 윤계상에서 배우 윤계상으로 전향한 지 꽤 오래됐건만, 아직도 배우로서 히트작은 손에 꼽기 어렵다.
흥행 여부는 아쉬울 법하다. 그래도 윤계상은 연기할 수 있어 좋다.
"흥행 욕심은 내려놨어요. 연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언젠가는 흥행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웃음) 처음에는 기대했는데 내려놓으니까 작품을 보는 눈이 달라진 건 사실이에요. 더 중요한 걸 볼 수 있는 눈이 생긴 것 같아요."
작품을 보는 그의 눈과 몸은 뻔한 작품이 아닌 다양한 도전 쪽으로 더 끌리는 듯하다. 지난달 24일 개봉한 영화 '소수의견'(감독 김성제)도 어떻게 보면 도전이었다. 많이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는 2009년 용산 철거민 진압 사건으로 사망한 사람들을 모티브로 했다. 강제 철거 현장에서 일어난 두 젊은이의 죽음을 둘러싸고 대한민국 사상 최초 100원짜리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변호인단과 검찰의 진실 공방을 둘러싼 법정 이야기로 순화시켰으나, 본질은 '용산참사'와 관련됐다.
사회적 이슈가 엄청났던 사건을 다룬 작품이니,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윤계상은 흔쾌히 참여했다. 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관심 있던 주제들이 시나리오로 다가왔을 때 작품을 택하는 것 같아요. '소수의견'은 사건 전개와 내용이 말이 안 되면서도 아이러니했죠. 어떤 것이 맞고 틀린 것인가를 떠나서 이 사건이 대중에게 다가갔을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민했고 또 궁금했어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그런 문제들에 관해서 관심이 있기도 했고요. 소수가 피해를 보거나 상처를 받았을 때,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윤계상은 극 중 평범한 변호사 윤진원에서, 소수를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이상적인 변호사로 변모한다.
"윤진원은 윤계상과 닮았어요. 윤계상은 배우도 되고 싶었고, 상업적으로 성공도 하고 싶었죠. 윤진원은 지방대 출신의 국선변호사면서도 거대 로펌에 취직하고 싶어 하잖아요. 처음에 윤진원은 정의감에 불타서라기보다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싶어 했을 뿐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결국엔 진정한 변호사의 모습을 찾아가는 게, 저와 비슷한 것 같아요.(웃음)"
'소수의견'은 촬영이 끝나고 2년이 지난 뒤에야 개봉하게 됐다. 투자 문제부터 개봉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윤계상이 함께 연기한 단역 배우의 이름도 잊어버릴 정도로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그사이 윤계상은 다른 작품들에 참여해 이미 팬들을 만났으니, '소수의견'의 촬영 현장이 세세하게 남아있지 않아도 당연하다.
물론 아직도 이 작품에 참여했을 때의 열의와 열정은 가득했다. "어서 빨리 관객과 만나고 싶었는데 다른 조건이 맞지 않았을 뿐"이란다. 그는 "개봉 한 달 전에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됐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감사하면서도 갑자기 걱정이 되더라. 그래도 영화를 보여줄 수 있게 돼 다행이고 기쁘다"고 웃었다.
윤계상은 또 "대중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는 모르겠다. 사실 영화는 가짜로 만들어낸 이야기"라며 "이 영화를 보면서 만약 이런 일이 있었을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우리가 그들의 입장일 때 어떤 마음일까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배우로서 이게 맞는 것 같다"고 몰입했다.
그러면서 "사실 내가 히어로물을 좋아한다. 약자를 위해서 어떤 사람이 앞서서 도와주고 하는 게 우리 '소수의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윤진원도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약자 편에 서서 움직이는 모습이 내 마음을 움직여 출연하게 된 것 같다. '소수의견'은 개인적으로 내게 히어로물"이라고 강조했다.
히어로물이라는 얘기가 나왔으니, 아무래도 과거의 윤계상에게 인생의 히어로 같은 존재는 그룹 god가 아닐까 싶다.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윤계상이라는 이름이 존재할 수 있게 한 그룹이니까. 팬들의 염원을 바랐는지 god는 지난해 재결합해 공연을 펼쳤다. 공연장은 매진이었고, 그들을 상징하는 하늘색 풍선이 객석을 꽉 채웠다.
"과거가 얼마나 큰 재산이고 소중한 기억이었는지 잊고 살았어요. 그때의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존재하고 그때의 나로 봐 주는 건 정말 큰 재산인 것 같아요. 지금은 배우라고 조절하고 조심하면서 배우로서 사는 삶에 제가 희생되는 부분이 많아요. 그런데 과거의 윤계상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날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때의 윤계상으로 기억해 주고 있어요. 마음이 그만큼 편해지더라고요. 다시 과거의 나를 찾는 것 같아서 뭉클하고 좋았어요."
god 재결합 콘서트로 깨달은 것도 있지만 연기활동을 하면서도 많이 성장한다고 고백한 윤계상. "그동안 작품을 대하는 여유가 없어 보여주기 급급한 연기가 많았다"는 그는 "작품 안에서 소통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래도 나한테 더 집중해 시야가 좁았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서 "(동료 변호사로 나온) 유해진 형한테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을 배웠고, (철거 현장에서 아들을 잃은 인물로 나오는) 이경영 선배에게는 끊임없는 열정을 배웠다"고 만족해했다. 그러면서 "조금 더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관람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감추지 않았다.
진현철/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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