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공식화했다. 최근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 1차 방안'의 중심은 '세대 간 상생고용 촉진'이란 이름을 내건 '임금피크제' 도입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정년 60세 의무화가 시행되면 청년 고용 문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 것이라고 한다. 노령의 근로자가 고임금을 계속 받아 기업 부담이 커지고 청년 취업 길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노사정 타협 불발로 강제 적용이 힘들어진 민간기업은 일단 놔두고,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임금피크제를 우선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316개 전 공공기관에 확대 도입하고, 민간에서도 자동차'금융 등 6개 업종부터 도입을 적극 유도한다는 것이 노동시장 개혁안의 핵심이다.
노동계는 강제적인 임금피크제 도입은 결국 사측의 임금 삭감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개혁안 내용 중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 마련이 논란이 됐다. 노조 동의 없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취업규칙은 채용'해고'인사 등과 관련된 회사 규칙이다.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바꿀 때는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임금 체계를 바꾸는 임금피크제도 당연히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사회 통념에 비춰 합리성이 있으면 노조 동의 없이도 예외적으로 인정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노조 동의 없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 불리한 사안은 노사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장년층 고용불안과 청년층 고용절벽의 우려가 현실이 되느냐, 새로운 노동시장 질서를 통해 상생의 고용 생태계를 만들어 가느냐는 바로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관계자는 "청년 고용과 고령자 고용은 대체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 연구 결과다. 고령자 임금을 깎은 돈으로 청년을 채용한다고 하는데 이는 임금 총액은 변함없다는 19세기 '임금기금설'로 현실 설명력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청년층 고용절벽이 과연 '노령자가 고임금을 계속 받아' 벌어진 일일까? 한국의 대기업 성장은 다분히 국민적 지지와 정부의 지원 덕분에 가능했다. 국산품을 쓰면 애국자고, 외제품을 쓰면 매국노라고 배우며 우리 기업들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왔다. 그렇게 성장한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 규모인 540조원의 사내 유보금을 쌓아놓고 있으면서도 정작 청년 고용을 외면하고 있다.
'반기업 정서'가 팽배해 있다며 눈을 부라릴 필요도 없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행태를 보이며 정작 반국민 정서를 보인 게 누구였던가. 그런데 정부는 지금 와서 한 달에 400만원 받는 아버지의 월급을 절반으로 줄이고, 월급 100만원 주는 아들을 고용하면서 '일자리 나누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대승적 취지에는 공감한다. 젊은 세대들이 일해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좌절과 절망 속에 한숨만 짓게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 해결책이 '노조 동의 없는 임금피크제' 추진이라는 우격다짐식이 돼서는 곤란하다. 한국노총은 지난 4월 결렬된 노사정위에서 5대 수용 불가 사항 중 하나로 임금피크제 의무화를 천명했다. 민주노총은 물론 한국노총까지 임금피크제 도입을 반대한다면 민간기업들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는 사실상 힘들어진다. 민주노총은 27일 서울역 앞에서 조합원 2만여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했고, 다음 달 4일에는 한국노총이 총파업을 벌일 예정이다.
노동시장 개혁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노사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 공무원연금 개혁처럼 노동시장 개혁도 사회적 대타협으로 풀어내야 한다. '무조건 따르라'는 식의 개혁은 오히려 사회적 갈등만 야기하고 경제적 기회비용 부담을 지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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