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 24시-현장기록 119] First in, Last out

입력 2015-06-25 05:00:00

몇 해 전 겨울, 여느 때처럼 담당 업무를 마무리 짓고 개인 체력단련에 한창이던 오후 늦은 시간, 안전센터에 다급함을 알리는 출동벨 소리가 울렸다.

"○○동 ○○빌라 2층에 연기 발생! 화재출동하세요!"

출동벨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또 뛰기 시작하는 심장, 이제 적응할 때도 된 것 같은데 내 심장은 10년 전 첫 출동 때와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낯설고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현장에 대한 불안감, 현장 활동에 대한 두려움, 인명구조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감들로 늘 이렇게 뛰는 것일까.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체력단련으로 흘린 땀을 닦을 새도 없이 신속히 차량에 탑승했다.

화재현장이 거리상으로 그리 멀지 않아 신속하게 개인 화재진압 장구를 착용하고 현장 상황 파악을 위해 선착대의 무전에 귀 기울였다. 사이렌을 울리며 차량을 타고 5분 정도 지나 현장 인근에 도달하자 몇몇 주민들이 마중을 나와 손짓을 하고 있었다. 현장 상황의 위급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화재현장 도착 후 확인해 보니 주민들이 가리키고 있는 빌라 2층 창문 밖으로 검은색 연기가 스멀스멀 새어 나왔다. 불이 성장세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신속하게 2단 사다리를 펴서 2층 창문에 기대었다.

현장 진입을 위해 공기통의 공기로 숨을 쉬기 위한 면체를 착용하고 소방호스를 짊어진 채 사다리 가로대를 하나씩 밟고 올라갔다. 2층에 다다라 창문을 열자 곧 시커먼 연기가 나의 온몸을 감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내부에 진입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사다리에서 이탈해 창문틀에 한 발을 지지하고 다른 한 발을 거실 내부로 내딛는 순간 '우당탕탕!' 하면서 그만 발아래 놓여 있던 가재도구들을 밟고 미끄러지며 넘어져 버렸다.

착용한 방화복, 공기호흡기, 관창 및 소방호스 등 20㎏이 훨씬 넘는 장비의 무게가 더해져서였을까. 동시에 무릎에서도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통증이 엄습했다. 사고 후 병원 진단 결과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된 순간이었다.

적막하고 깜깜한 화재현장에서 소리칠 여력도 없이 덩그러니 혼자 쓰러져 무릎을 붙잡고 신음하며 통증을 느끼고 있던 찰나 사랑하는 가족들, 동료들 그리고 그동안 화재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순직하신 소방공무원들 생각이 불현듯 내 머릿속을 스쳤다. 절체절명의 그 순간, 비록 나는 공기호흡기를 통해 숨을 쉬고 있지만 혹시 내부에 연기에 질식되어 쓰러져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를 거란 생각에 아픔도 잊은 채 재빨리 바닥을 기고 벽을 짚어 가며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을 현관문을 찾아다녔다.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대원들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가까스로 현관문을 찾아 몸을 일으켜 세우며 문을 열자 대기 중이던 대원들이 하나 둘 내부로 들어왔다. 내겐 천군만마와도 같았던 그리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반가움이란…, 요구조자의 마음이 과연 이런 걸까?

그렇게 안도의 시간도 잠시, 곧장 대원들과 함께 다리를 절뚝이며 화재가 발생한 지점을 찾음과 동시에 내부 요구조자를 수색했다. 집안 곳곳을 수색한 끝에 안방 침대 위 불꽃을 확인하고 놓쳐 버렸던 소방호스를 다시 찾아 불을 껐다. 그리고 계속되는 요구조자 수색 중 잦아든 연기 사이로 침대 옆에 온몸이 검게 그을린 채 아주 얕게 숨만 쉬고 있는 한 남성을 발견했다.

"요구조자 발견!"

내가 소리치자 몇몇 대원들이 들것을 대용한 이불로 신속하게 요구조자를 감싸 들고 외부로 구출했다. 그리고 다른 대원들과 함께 인명 검색을 위해 집안 곳곳을 재차 확인한 후에야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마지막으로 절뚝이며 현장 밖으로 빠져나오는데 긴장이 풀렸는지 애써 참았던 통증이 밀려오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몇 걸음 못 가 바닥에 풀썩 쓰러져 대기 중이던 구급차에 몸을 싣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 비록 다치긴 했지만 한 사람을 위험에서 구조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어떤 위험한 현장이라도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나중에 나오는 이것이 바로 소방관의 사명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오늘도 출동 대기 중 아직도 선명한 수술 자국의 훈장을 보며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First in Last out!'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