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삼포와 분청(憤靑)

입력 2015-06-23 05:00:00

'88만원 세대'와 '삼포세대'가 유행한 지도 꽤 오래됐다. 일자리가 없는 젊은 세대에서 연애와 결혼, 출산 등 세 가지를 내던지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나타난 조어다. 급기야 '오포세대'까지 등장했다. 오포는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아버지 세대와 달리 요즘 신세대는 극심한 병목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낙오자가 쏟아지고 학업을 끝내면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할 일들이 신기루처럼 멀어지고 있다. 희망과 미래가 없는 신세대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얼버무리지만 지금 청춘의 현실은 성장통치곤 너무 가혹하다.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이나 1980, 90년대에 태어난 중국 신세대의 처지도 다를 바 없다. 최근 중국 청년들 사이에 취업난과 저임금, 비싼 집값 때문에 빈털터리라는 뜻의 신조어가 유행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밖에 없으니 홀딱 벗은 것과 같다며 '뤄'(裸)자를 붙인 조어가 쏟아지고 있다는 뉴스다. 취업 준비도 못 한 졸업을 뤄비(裸畢), 빈 몸으로 결혼하면 뤄훈(裸婚), 인터넷으로 싸구려 물건을 사면 뤄거우(裸購) 식이다.

CNN은 최근 과다한 결혼 비용 때문에 빈손으로 결혼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중국 신세대의 '뤄훈' 문화를 조명했다. 이른바 중국판 삼포세대는 대졸자의 폭증 탓이다. 1990년대 말 85만 명이던 대졸자가 15년 만에 9배 늘어 750만 명씩 쏟아지니 미취업자가 속출하고 저임금에 시달리는 청년들로 넘쳐난다.

청춘의 자포자기는 곧 분노를 의미한다. 세월호 참사나 땅콩 회항, 메르스 사태에 신세대의 분노가 더욱 큰 것은 우리 사회 지도층의 부패, 무능과 함께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사회구조 탓이다. 정치권과 공직사회, 재벌이 청년 분노 즉 분청(憤靑)을 키우는 토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저께 소방 호스를 붙들고 물 대는 대통령의 모습이 신문 지면을 채웠다. 가뭄도 가뭄이지만 국민, 특히 신세대의 혈압은 더 올랐을 것이다. 국정 책임자이면서도 메르스 사태와 가뭄에 대처하지 못하고 국민 눈높이에 전혀 맞추지 못하는 대통령에 대한 실망 때문이다. 이러니 지지율 29%도 많다고 여긴다. 20~40대 지지율은 고작 10%대다. 계속 엇박자나 내고는 돌아서서 "당정은 한몸"이라고 눙치는 여당이나 정쟁으로 날 새는 야당도 마찬가지다. 분청이 계속 번지면 반드시 불쏘시개를 요구한다. 원래 옹이가 잔뜩 박힌 나무가 오래 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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