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따라하지 않아야 산다

입력 2015-06-17 05:00:00

온 나라가 메르스라는 역병으로 난리다. 역병은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언제 어디서 들이닥쳐 나와 내 가족, 내 동료를 데려갈지 모른다. 체감하기는 어렵지만 현실로 다가오면 지금 대한민국에서처럼 공포 그 자체다. 천재지변과는 차원이 다르다. 입에 올리기 부담스럽지만 '세월호'는 안타까워하고 발을 동동 구르기는 했지만 따져 들자면 '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메르스라는 이 역병은 이제 내 바로 앞에, 내 옆에 닥친 일이다.

그래도 아무리 메르스라고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다윗 왕의 반지에 새겨진 글처럼 언젠가는 지나가고 사라질 것이다. 세상 어떤 것이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사라지는 법이니까. 또 역병이란 게 원래 한철 불다가 지나가는 계절풍이나, 한때 열광하다 식어버리면 외면하는 유행과 같아서다.

필자가 보기에는 메르스 이후가 더 문제다. 메르스라는 역병을 호되게 앓으면서 보여준 우리 사회의 민낯은 우리 사회가 좀처럼 정상으로 되돌려 놓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음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낯뜨거운 광경은 정상화에 너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르고, 그런 희생을 치르고도 원래대로 되돌려 놓지 못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병원과 환자 사이에,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들 사이에 놓인 불신의 장벽은 마음을 짓누른다. 메르스 사태로 더 두터워졌고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공자님 말씀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공동체를 구성하는 중요한 나사못 하나가 빠진 것처럼 허전하다. 신뢰는 잃어버리기는 아침나절의 이슬처럼 쉽지만 제자리에 찾아서 되돌려 놓기는 참으로 무거운 물건이다.

학생들을 포함한 승객 304명은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만 믿고 따르다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상 징후 이후 1시간 동안이나 미적미적 아무런 조치도 없다가 고작 했다는 것이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이었다. 그 말을 따르지 않았던 사람들은 살아서 돌아왔다. 1년 전 세월호 때의 일이다.

이번에도 당국은 변한 게 없었다. 정보를 붙잡고 놓지 않은 채 낮은 수준의 전염병이라고 했고, 공기 중 전염이 안 된다고 했고, 환자와 2m 이상 떨어져 있으면 괜찮을 정도로 전염력이 낮다고 했고, 젊고 건강한 사람은 괜찮다고 했고, 쥐새끼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흘렀다. 사람들은 정부가 흘려주는 제한된 정보만 믿고 따르다가 큰코다쳤다. 늦었지만 동분서주해서 마스크를 구해 쓰고 다녔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멀리했다. 정부가 일러준 방향과 반대로 갔다. 결국 그 방향이 옳았다.

그동안 당국은 물샐 틈 없는 방역을 강조했지만 막은 것보다는 뚫린 게 더 많을 정도로 곳곳에서 구멍이 났다. "국가가 뚫렸다"고 한 삼성서울병원 의사의 말도 싸가지 없어 보이긴 했지만 틀린 건 아니었다.

아파도 병원 안 가고, 배고파도 식당에 안 가고, 극장도 안 가고, 백화점도 안 가고, 시장도 안 가는 건 스스로 알아서 살 방도를 찾으려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결과물이다. 반복된 쓰라린 경험을 통해 알아낸 삶의 지혜다.

이번에도 결정적으로 국민들을 실망시킨 건 대통령의 말이다. 15일 대통령은 "국민 생활이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당부를 했다. 하지만 그날도 그 다음 날도 메르스와의 전쟁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바로 그때 청정 대구경북의 메르스 방역망이 차례로 뚫려 비상이 걸렸다. 대통령이 아무리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해도 국민들이 곧이듣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안 듣고, 시키는 대로 따라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걸 국민들은 너무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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