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술에는 장사 없다

입력 2015-06-15 05:00:00

수화기를 들자마자 "여보세요"라는 낮게 깔린 고함 소리에 놀라 심장이 벌렁거린다. 말끝을 늘어뜨리는 투로 봐서 지금도 술에 취한 상태다. 툭 하면 전화를 걸어와 여러 상담원이 알고 있는 사람일 뿐 아니라, 어떻게 대처하라는 작은 벽보까지 붙이게 만든 장본인이다. 늘 반복적으로 전화를 거는 한 60대 알코올 중독자였다.

고함을 치다가도 목소리 깔기를 반복하며 말하는 그의 하소연을 들어보면, 그는 젊은 날 외국에서 공부를 했고, 정치인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이 알고 있다고 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여러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했고, 정말로 영어나 일본어를 섞어 말하기도 했다. 또 정부의 비밀요원(?)으로 일했다고도 했다. 그는 딸 하나를 두고 아내와 일찍 사별했다고 했다. 지금은 어머니, 딸과 함께 셋이서 살고 있단다. 생활이 어떤지 물으니 '허허허' 너털웃음을 뱉으며 도와줄 수 없으면 묻지도 말라고 했다. "뭐 그럭저럭 사는 거지. 허허허…."

술 취한 상태의 내담자가 하는 이야기는 들어주는 것을 자제해야 하지만, 실은 안쓰러울 때가 많다. 술이란 것도 우리 삶에 윤활유로 쓸 수 있는 도구이지만, 술의 노예가 된 사람에게 술은 인격을 황폐화시키는 무서운 존재다. 술의 남용은 신체를 손상케 할 뿐 아니라 정신마저도 좀먹는다. 결과적으로 교통사고, 자살, 살인 등의 범죄와 가정파탄을 초래하는 요인이 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어느 학자에 의하면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어떤 대사 장애가 있어 그 결함을 보충하려는 본능적 요구가 있다. 알코올은 다른 영양분의 섭취를 방해하기 때문에 결핍상태를 악화시켜 칼로리 근원으로 알코올에 대한 요구를 더욱 증가시킨다는 것. 알코올 중독의 다른 원인으로는 부모가 고의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아이를 거부했을 때나 사랑이 결핍되었을 때 초래한다. 따라서 의존에 대한 욕구가 알코올 중독을 부른다는 견해가 있다. 또한 과잉보호를 받아 응석받이로 자라거나, 가정적인 불행으로 어린 나이에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는 경우에도 의존에 대한 욕구가 형성된다고 한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의존 욕구는 현실에서는 만족될 수 없기 때문에 불안을 일으키고, 힘을 마음대로 휘둘러 뭔가를 성취하려는 보상의지를 만든다. 즉 술이 약리적 효과로 불안을 진정시키고 담력을 키워줘 큰소리 뻥뻥 치게 만들지만, 깨고 나면 달라진 게 없어 죄책감과 절망감을 느끼고 무력감이 더욱 강화된다. 이러한 갈등은 악순환되고, 결국 습관적인 과음을 부르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은 만성적 자살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의존적이든 자기 파괴적이든 심적 갈등을 가진 사람이 유전적인 소인까지 더해져 알코올 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복통으로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마약이 선약(仙藥)이 되지만, 아편쟁이에게는 인격을 파괴하는 독약이 된다. 술도 마찬가지다.

"속이 상해 술로 달랜다고 하지만, 이 세상 속 편하게 사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유가형 시인'대구생명의전화 지도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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