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다이라 가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무사정권이 수립된다. 이른바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의 탄생이다. 이때가 1192년이니 에도 막부(江戶幕府)가 몰락한 1867년까지 무려 675년간 막부시대, 곧 일본식 봉건시대가 지속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패한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이어 권력을 장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주도의 에도 막부시대를 연다. 지금의 도쿄를 중심지로 한 에도 막부시대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일본다운 모든 것을 만든 시기다. 가부키와 스시 그리고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자포니즘(Japonism)의 근간은 이 시기에 완성된다.
일본인 특유의 예절과 자신의 위치에서 집중하는 문화 또한 에도 막부시대의 산물이다. 맡은 바 정성을 다하는 마코토(誠)와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시츠케(仕付け)는 엄격한 계급사회로 구성된 에도 막부시대에 완성된다. 군국주의와 국가주의에 매몰된 20세기를 거치며 정형화되고 규격화된 경직성을 보이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절제된 모습을 보인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인이 보여준 모습이 상징한다.
막부 체제하에서 지역 영주는 다이묘(大名)라 불리며 영지를 다스렸다. 에도 막부시대에 와서 다이묘는 영주로서의 지위가 보장되었고 막부 휘하의 엄격한 신분 질서를 따른다. 사농공상의 질서가 정착된 에도 막부시대, 다이묘는 자신의 영지에서 왕과 다름없는 지위였다. 다이묘뿐만 아니라 무사계급 또한 지위를 인정받는다. 이들만이 성씨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칼을 차고 다녔고 권위가 손상 받았을 때 생사여탈권을 가졌다. 종종 대중문화 작품에 비친 무사계급은 그들만의 질서 속에 머무르는 잔인한 칼잡이로 그려지지만 실제는 하위계급에게 보여지는 도덕성이 강하게 요구되었고 무거운 책임감도 있었다.
실제로 다이묘나 무사계급은 대부분 빚쟁이 신세였다. 이들은 농민과 공상인 같은 민중들을 위해 항상 베풀어야 했고 영지 내 내수시장을 주도해야 했다. 영지 내 반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돈과 인심을 써야 했다. 또한 자신들이 뱉은 말에 반드시 책임을 졌다. 이는 막부와 제번, 무사계급의 재정악화로 이어지고 막부 체제 몰락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민중들이 마코토와 시츠케를 지금까지 신뢰하는 이유기도 하다.
메르스 사태가 확산하면서 기침 예절과 마스크 착용, 손 씻기만 잘해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는 기사들이 쏟아진다. 일본을 예로 들어 타인에 대한 배려를 소개하기도 한다. 실제로 일본은 흔한 감기만 걸려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심지어 가족과 함께 잠을 자지 않고 혼자 재운다. 간병문화도 우리와 차이가 있다. 기본적으로 일본에서 간병은 의료인들의 몫이다. 이번 사태를 경험하면서 한국사회의 병원문화, 간병문화 등에 대한 고민은 있어야 한다.
또 하나 다른 점. 일본은 특정 전염병이 발생하면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조심스럽고 신속하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발 빠르게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언론은 시시각각 보도를 쏟아낸다. 계급마다 고유의 업무가 있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것이 다이묘 시절부터 익혀 온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어떤가. 정부가 실패한 방역은 시민 개개인의 경각심과 의료진, 일선 공무원들의 노력으로 메워지고 있다. 이번에도 미담은 아래에서 만들어진다. 권한은 위가 가지고 책임은 아래로 밀어내는 한국 사회의 모습에서 제2, 제3의 메르스 사태는 언제나 찾아올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책임 있고 권한 가진 이들에게 기대하는 이가 드물다. 권한은 내리고 책임은 올리라는 조언. 한국 사회의 책임 있는 이들이 새겨야 할 것이다.
권오성/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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