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군은 명실상부한 호국의 고장이다. 이곳을 터전으로 살고 있는 나로서는 항상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고 있지만, 유독 6월이면 선배 영령을 향한 마음이 더 애절해지는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산화한 수많은 애국선열을 추모하며, 심금을 울린 두 실화를 소개한다. 1950년 8월 1일부터 55일 동안 낙동강과 다부동 일대를 최후의 방어선으로 삼아 북한군의 8, 9월 대공세를 저지하다 실종된 국군과 미군 남편을 기다리던 두 여인의 이야기다.
국군 남편의 무사 생환을 기도하던 여인은 50년의 기다림 끝에 국방부 유해발굴사업이 시작되던 지난 2000년 4월, 칠곡군 328고지에서 남편 고 최승갑 하사와 재회했다. "이렇게 백골이라도 보니 좋아요. 부디 좋은 데로 가세요." 이들 부부의 애끊는 사연은 1천174만여 관객을 동원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이자 스크린의 첫 장면이 됐다.
또 다른 여인은 65년간 남편을 기다렸으나 다른 7천여 미군 실종자와 마찬가지로 끝내 백골로도 재회하지 못했다. 그녀의 마지막 유언은 "남편 곁에 머물게 해 달라"였다. 유언은 지난 5월 25일 낙동강 호국의 다리 아래에서 화장된 그녀의 뼛가루가 뿌려지면서 지켜졌다. 미 육군 중위 고 제임스 엘리엇의 부인 이야기다.
6'25전쟁 당시 실종된 국군'경찰'학도병 수가 13만여 명에 이른다. 국방부는 지난 15년간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추진해 총 9천여 구의 유골을 수습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그 중 1.3%인 107명의 신원이 밝혀져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아군 최후의 방어선이자 반격의 기점이었던 '호국평화의 도시' 칠곡군에서도 올해 82구를 포함해 지금까지 총 1천440명의 유해를 수습했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로 시작하는 가곡 '비목'의 슬픈 노랫말처럼 아직도 수많은 호국영령이 산야에 묻힌 채 혼백이나마 고향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붉은 선혈을 뚝뚝 흘리며 꽃처럼 산화한 애국용사들, 그 마지막 백골을 찾을 때까지 유해 발굴을 계속함이 그들을 자양분 삼아 이 땅에 피어난 우리들의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실상 유해 발굴의 마지막 골든타임이 지나고 있다. 유해 발굴의 핵심은 '제보'다. 열정만 가지고 맨땅에 삽질만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국방부는 참전용사나 주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현장답사, 자료 분석, 금속 탐지기 조사 후 본격 발굴에 착수한다. 문제는 그 증언을 해줄 참전세대가 80대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에 장사 없다고 강산(江山)이 10번, 세대(世代)가 2번 바뀌는 동안 "내가 나라를 구했노라"고 외치던 구국의 용사들도 이제는 먼저 간 전우를 따라 먼 길을 떠나고 있다. 이들이 모두 가시고 나면 우리는 유해 발굴의 나침반마저 잃게 된다. 국방부가 향후 5년이 발굴사업의 성패를 가늠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6'25전쟁이 이 산야를 할퀴고 간지도 벌써 65년이 흘렀다. 그 긴 세월을 눈에 흙이 들어가도 차마 눈 감지 못하는 호국영령들이 있고, 아직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그들의 아내와 자식들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이분들의 한(恨)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참전유공자 증언록 제작 사업에 보다 심혈(心血)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만이 유해 발굴의 골든타임을 늘릴 유일한 방법이다.
산도, 들도 온천지가 그저 푸르기만 한 녹음의 계절이다. 그 신록에 마냥 취해 핏빛으로 물들던 지난 6월의 산야를, 그리고 아직도 그곳에서 울고 있을 호국영령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무이자, 애국이고, 또한 보훈 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다.
백선기/칠곡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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