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에 지슬리(芝瑟里)라는 제법 큰 마을이 있다. 병풍처럼 펼쳐진 우미산 등성이에 세 개의 자연마을이 올망졸망 모여 이루어진 동네인데, 동쪽의 우미산을 등에 업고 서쪽으로 트여 비슬산(琵瑟山)을 마주 보고 있다. 감나무, 사과나무가 어우러져 전원적인 운치가 한층 돋보이는 지슬리는 비슬산의 아름다운 전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소위 명당 터라 불리는 전형적인 장수촌이다.
최근에 떡, 과일, 식혜 등을 챙겨 이곳 경로당을 방문했다. 100세를 바라보는 건강한 어르신들은 죽기 전 소원이 바로 코앞에 있는 비슬산 정상을 올라가 보는 것이라는 다소 의외의 말씀들을 했다. 온 산이 민둥산이었던 보릿고개 시절에 땔감 나무를 구하기 위해 지게를 지고 비슬산을 구석구석까지 누볐다고 한다. 평생 동안 눈만 뜨면 비슬산 사계절을 마주하고 살아왔으니, 죽기 전에 산정에 올라 옛 추억을 회상해보고 싶다고들 했다. 또 조상님들의 산소며, 피땀 어린 논밭과 현재 살고 있는 지슬마을은 물론, 청도 산하와 산 넘어 낙동강이 흐르는 달성까지 그 모든 것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다는 장수촌 어르신들의 소박 하면서도 큰 꿈인 것이었다. 한 할아버지가 태연하게 말씀하셨다. "주지 스님이 용천사에서 비슬산 꼭대기까지 케이블카를 놓아버리세요." 실소(失笑)를 겨우 참는 콧등으로 시큰한 인간적 연민이 느껴졌다.
대책도 없이 그 꿈들을 이루어 드리겠노라고 선뜻 약속을 해놓고, 절을 향해 돌아서는 필자의 가슴에는 주름진 어르신들의 애잔한 모습이 강물처럼 흘렀다. 동시에 해발 1,000m가 넘는 비슬산이 더욱 높아 보이고 어머니처럼 위대해 보였다. 사실 비슬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문제는 달성군민과 지자체가 심도 있게 고려해 봐야 할 사안이다. 첨단기술산업단지 테크노폴리스가 들어섰고, 천년고찰 대견사 중창이 완성되었다. 매년 봄에는 비슬산 참꽃문화제가 있고 겨울에는 얼음축제가 열린다. 천연기념물 암괴류와 함께 절경을 이루는 가을 단풍철에도 전국에서 등산객이 수없이 몰려든다. 이와 같은 상황을 종합해보면 비슬산을 찾는 사람의 수가 연 1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쯤 되면 수많은 인파로 인한 천연기념물 및 자연훼손과, 지속적으로 몸살을 앓게 될 비슬산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궁여지책으로 달성군에서 전기차를 운행하고 있지만 좁은 임도(林道)에서 등산객들과 얽혀 운송수단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케이블카 운행이 오히려 더 실질적인 교통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고령화 시대에 높은 곳에 올라가 비슬산의 절경을 즐기고 싶어하는 노인층과 거동 불편한 장애인들 욕구까지 배려한다면 케이블카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가까이는 대구 앞산과 팔공산에, 또 멀리는 서울 한복판 남산에도 케이블카는 제법 오랜 역사를 간직한 채 서민들의 관광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강원도 설악산, 해남 두륜산, 통영 미륵산에도 하늘길을 열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중국 장가계 천문산 케이블카와 스위스 알프스산맥의 몽블랑 언덕을 잇는 케이블카는 세계인들이 다투어 찾는 관광명소다. 비슬산 또한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운행된다면 이 못지않은 세계적 관광명소로 지역경제 발전에도 한몫을 담당하리라 본다.
물론 케이블카는 어느 곳이든 설치할 때마다 보전과 개발, 환경과 공익이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한다. 이러한 충돌은 상호 다양한 대화로 어느 길이든 좀 더 좋은 쪽으로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달성군과 청도군은 비슬산 108㎞ 둘레길을 닦고 있다. 또한 청도군은 용천사를 기점으로 정상에 오르는 등산로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있으며, 대형주차장과 휴양림을 조성 중이다. 이러한 지자체들의 노력과 많은 사람들의 지혜로 친환경적인 비슬산 케이블카 설치를 이제는 고민해야 할 때이다.
지거 스님/청도 용천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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