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바이러스 덮치는데…'감염병 예산' 1억 깎였다

입력 2015-06-04 05:38:24

격리병상 만든 후 예산 줄여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감염병 대응 체계를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역학 전문가는 턱없이 부족하고, 관련 예산은 오히려 줄고 있기 때문이다.

메르스를 초기에 잡는 데 실패한 가장 큰 이유로 부실했던 초동대처가 꼽힌다. 신종 인플루엔자 등 새로운 전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지적됐던 방역 체계의 허술함이 이번에도 고스란히 노출된 셈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에 역학조사를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인력은 20명도 되지 않는다. 특히 감염병 역학 전문가는 5명 미만이다. 이 때문에 신종 감염병이 유입되면 대학병원의 감염내과 전문의를 차출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2009년 국가지정격리병상을 갖춘 대구 A병원 경우 18억원을 들여 격리병상을 갖추고도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감염내과 전문의나 호흡기내과 전문의가 단 한 명도 없는 형편이다.

반면 미국은 지난 60년간 배출된 '질병 수사관'(disease detective)만 4천여 명에 이른다. 인구 규모를 감안하더라도 국내에 비해 역학전문가가 200배나 많은 셈이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직원 1만5천 명이 연간 11조원 규모의 예산을 사용하며 매년 70여 명의 '역학조사 전문요원'(EIS)을 양성한다. EIS는 의대 졸업생이나 역학분야 박사 자격자를 선발해 2년간 체계적인 실무 교육을 통해 현장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허술한 감염병 관리 형태는 지난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와 흡사하다. 당시 국내에서 발생한 첫 신종플루 사망자는 태국에서 귀국한 뒤 3일 만에 증상을 호소했지만 1주일이 지나서야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았다. 초기방역 실패로 감염이 확산되고, 괴담이 유포되면서 불안이 증폭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번에도 그대로 이어진 셈이다.

공공보건의료와 감염병 관리에 대한 인색한 투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는 올해 안전 관련 예산을 전년보다 2조2천억원 늘어난 14조6천억원을 책정했지만 감염병에 대비한 예산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다. 감염예방관리 예산이 5억원, 신종감염병 입원치료병상 확충유지비 3억원, 감염병 확산방지 검역관리 예산이 겨우 2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신종감염병 대책 예산은 오히려 1억원이 줄었다.

허지안 영남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국가지정격리병상을 만든 이후 감염병 환자의 관리와 역학 조사를 위한 예산 투자는 오히려 사라졌다"면서 "발열 환자는 감염병 진단을 받기 전이라도 격리된 공간에서 진료와 치료를 받을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장성현 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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