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실버 문학

입력 2015-06-03 05:00:00

지난해 연말 영화 '국제시장'을 10여 명이 함께 관람했다.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나이였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하나의 장면을 두고 세대별로 반응이 달랐다는 점이다. 문제가 된 것은 흥남철수 때 미 제10군단장 알몬드 장군이 무기와 장비를 버리고, 피란민을 수송 선박에 태운 장면이었다. 함께 영화를 봤던 30대 초반 청년은 "군인이 무기를 버리고 피란민을 태운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지적했다. "역사적 사실인데?"라고 했더니 "그렇더라도….(영화를 그렇게 만들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말이었다. 하나의 피란 장면을 두고 어떤 이는 전투에 임한 '군인의 상식'에서 바라보고, 어떤 이는 '피란민의 절박함'에 방점을 찍기 때문일 것이다.

1930, 40년대 한국에서 태어난 세대가 물려받은 유산은 가난과 폐허, 절망과 고통이었다. 그들은 먹고 싶은 것을 먹지 않고, 입고 싶은 것을 입지 않았으며, 쉬고 싶어도 쉬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느라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걸음을 재촉했고, 밤이 깊도록 고단한 육체를 눕히지 못했다. 그들 대부분에게는 하루하루 끼니를 이어가는 일조차 벅찼다. 그렇게 그들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역사 이래 가장 강하고 부유한 대한민국을 건설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20, 30대에게는 다이어트가 걱정일지언정 배고픔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끼니가 절체절명의 과제였던 세대와 다이어트가 과제인 세대, 해야만 하는 일을 했던 세대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세대는 입장이 다르다. 그래서 한 세대는 또 다른 세대의 선택과 욕망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30대가 70대의 관광버스 막춤을 추하게 여기고, 70대가 빈둥거리는 젊은 몸뚱이를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까닭이다.

매일신문사는 전국 신문사 최초로 '실버문학상'을 제정했다. 시(한시, 시조 포함), 수필, 논픽션 분야에서 실버세대(1950년 6월 30일 이전 출생자)의 곡진한 경험이 담긴 작품을 받아 시상하고, 수상작 중 다수 작품을 매일신문에 연재하기로 한 것이다.

실버문학상을 제정하고, 수상 작품을 연중 지면에 게재하기로 한 것은 펄펄 끓는 실버들의 문학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함이다. 동시에 세대 간, 사람 간 이해와 소통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땀과 눈물이 묻어나는 작품을 통해 실버들은 '힘들고 어려웠지만 멋지게 한 세상 살아왔음'을 스스로 확인하게 될 것이고, 후배 세대들은 선배 세대들이 그 좁은 관광버스 안에서 막춤을 추는 까닭을 납득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문학적 완성도를 떠나, 한 사람이라도 더 실버문학상에 응모해주시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곧 세대 간, 사람 간 소통을 돕고,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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