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죄를 지어 매를 맞을 때는 언제나 그 매가 아팠는데, 지금은 어머니의 힘이 모자라 능히 저를 아프게 하지 못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울었습니다."
'백유읍장'(伯兪泣杖). 중국 한(漢)나라 때의 효자로 유명한 한백유와 관련된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백유는 부모가 늙지 않았을 때는 매질이 아무리 매섭고 아파도 자식을 걱정해 때리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자신의 얼굴에 변화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가 늙고 쇠약해져 매를 들었을 때는 매를 맞아 아파서 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늙음이 안타깝고 못내 서러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던 것이다.
사랑과 감사, 존경이 가득했던 가정의 달 5월이 어느덧 저물었다. 농어촌에 계신 부모님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부모가 되면서 본인들의 삶을 구석 한쪽으로 내려 놓고 자식의 성공을 위해, 앞날을 위해 한평생을 생명의 대지인 농지에 헌신하신 우리네 부모님. 이제 와 그들을 다시 한 번 바라보니 백발이 성성하고 몸도 왜소해진 모습에 백유읍장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 싶어 마음이 아려온다.
아직도 시골에 가 보면 도시에 사는 자식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기 위해 시골에서 어르신 부부만 살거나 홀로 거주하는 분들이 많다. 조금은 내려놓아도 될 텐데 본인들의 영농은퇴가 자녀들에게 가져다줄 부담감을 알기에, 농업인들도 여느 직장인들처럼 불안한 노후를 예상하는 탓에 힘에 부치면서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바꿔 생각해보면 이렇게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고령의 농업인들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노후대책이 있다. 경제적 독립을 하면서도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충족할 수 있는 제도, 바로 '농지연금'이다.
농지연금은 도시민들이 '주택'을 통한 주택연금으로 노후를 준비하듯, 농업인들이 소유 '농지'를 담보로 매월 일정 금액의 자금을 연금 방식으로 지급받는 역모기지 제도다. 신청 자격은 65세 이상이고 영농경력 5년 이상, 소유농지 3만㎡ 이하면 가입할 수 있으며, 종신형과 기간형(5년, 10년, 15년) 중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70세 농업인이 공시지가 2억원의 농지를 담보로 종신형에 가입할 경우, 매월 82만원의 연금을 평생 동안 수령할 수 있다. 또한 농지연금에 가입한 농업인은 연금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땅에 직접 농사를 지을 수도 있고 임대를 통해 추가 소득을 얻을 수도 있다.
최근에는 가입 범위, 지급 규모 등 농업인이 받는 혜택이 늘어나도록 제도가 대폭 개선됐다. 기존에는 부부 모두 만 65세 이상인 경우에 한해 가입이 가능했던 농지연금이 농지 소유자가 만 65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입이 가능하도록 변경됐다. 담보농지의 평가방법도 공시지가와 감정평가 금액 80% 중 유리한 부분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으며, 가입비가 폐지되고 대출이자도 4%에서 3%로 인하돼 농지연금 가입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공사는 지난 2011년부터 현재까지 대구경북 농업인 521명에 총 51억원을 지원해 고령 농업인들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도모하고 있다. 올 한 해도 총 21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고령 농업인의 원활한 영농은퇴를 지원할 계획이다. 아직까지 농업인들에게 농지는 '자산'이라기보다는 '상속'으로서의 가치가 좀 더 우선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은퇴 후 삶이 길어지는 100세 시대, 고령 농업인의 인생 제2막을 위해 필요한 자산으로서의 가치도 이제는 생각해볼 때다. 지금부터라도 고령 농업인들이 행복한 은퇴를 맞이할 수 있도록, 자녀들이 먼저 '농지연금'을 권해보자. 백유읍장의 마음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며, 지금껏 우리를 위해 살아왔던 부모님의 인생 제2막이 농지연금으로 좀 더 여유롭고 풍요로워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권기봉/한국농어촌공사 경북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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