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성장시킨 책, 로빈슨 크루소

입력 2015-06-01 05:00:00

책이 넘치는 세상, 한 번 읽고 잊는 책도 있지만 제게는 평생 함께하고픈 책이 있습니다.

모험소설에 푹 빠져 있던 10대 초반에 세계문학전집에서 이 책을 처음 만났습니다. 세상이 궁금했던 저는 로빈슨 크루소처럼 진짜 모험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배를 타고, 항해를 하고,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로빈슨처럼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중학생이 되어서 다시 이 책을 읽었습니다.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는지 '내가 만약 무인도에서 혼자 산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사춘기를 보냈습니다. 한참을 잊고 있다가 대학교에서 가정교육을 전공하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의식주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 책을 찾았고, 동화책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교사가 되어서는 학생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는 책이 되었습니다. "주인공이 무인도에서 28년간 살면서 옷을 만들고, 집을 짓고, 도자기를 굽는 과정은 인류가 문명을 형성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한 번에 배울 수 있는 책이야"라고 설명을 하면서 꼭 읽어보라고 방학과제로 내주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로빈슨 크루소를 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은 이 책에서 저는 새로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로빈슨 크루소와 프라이데이의 관계는 주인과 노예라는 사실. 목숨을 구해주었다고는 하지만 왜 프라이데이는 로빈슨 크루소를 주인으로 생각했을까요? 그리고 로빈슨 크루소는 왜 그런 프라이데이의 행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까요? '무인도에서 서로 의지하면서 살게 되었는데 그냥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이 책은 1719년에 발표된 작품이니까 당시에는 엄격한 계급이 존재했기 때문에, 로빈슨 크루소와 프라이데이의 행동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해피엔딩인 모험소설이 계급사회를 옹호하는 소설이었다니, 눈에서 콩깍지가 살짝 떨어졌습니다. 이 책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전히 로빈슨 크루소를 옆에 두고 있습니다. 청소년기의 자아정체감 형성 수업을 준비하다가 '딱' 좋은 부분을 여기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내 이성이 절망감을 누르기 시작하자 나는 나 자신을 가능한 한 위로하기 시작했고, 나쁜 점에 좋은 점을 대비시켜 놓아서 내 처지를 최악의 처지와 구별할 수 있는 점을 뭔가 밝혀보기로 하고서, 내가 누리고 있는 안락이 내가 겪는 비참함에 나란히 맞서도록 장부의 차변과 대변처럼 매우 공정하게 다음과 같이 적어 보았다."

이 글 아래엔 그가 자신의 상황을 정리한 표가 나옵니다. 절망의 상태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의 나쁜 점과 좋은 점을 적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주인공의 이성적 태도를 칭찬하면서 로빈슨의 표를 바탕으로 학생들과 자신의 상황을 정리하는 활동을 해볼까 합니다. 로빈슨처럼 우리 아이들도 용기를 내서 열심히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요.

조남미 월배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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