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의 어불성설 與 지도부 패착이 협상 그르쳐

입력 2015-05-29 05:00:00

野의 세월호 시행령 손질, 與 위헌소지 조건부 추인, 개혁 국민적 열망에 찬물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위헌 소지' 논란으로 결국 국회 통과를 위한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하고 좌초됐다.

입법부가 행정부의 시행령에 손을 대는 문제를 두고 여야가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률체계를 뒤집는 한이 있더라도 세월호 국정조사를 통해 정국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야당의 욕심과 시간을 두고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을 서둘러 꺼낸 여당 지도부의 패착이 국민적 지탄을 낳게 됐다.

여야는 28일 밤늦게 국회의원 총회를 열어 이날 오후 여야가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두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공무원노동조합의 의견을 청취한 일부 의원들의 반대토론에도 불구하고 여야 합의 정신을 존중해 만장일치로 타협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그런데 정국을 끌고 가야 할 여당에서 문제가 터졌다. 법조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국회가 정부의 시행령에 손을 댈 경우 위헌소지가 있다며 타협안을 받아들 수 없다고 버틴 것이다. 이에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는 이 같은 내용을 삭제하는 조건으로 의원총회의 추인을 받았다. 여당이 의총에서 협상안을 조건부로 승인받았다는 소식이 야당에 전해지자 이번에는 야당이 펄쩍 뛰었다. 타결안의 핵심이 훼손됐다고 주장하며 협상파기를 선언한 것이다.

박수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시행령 손질 법안'은 여야 합의안의 가장 핵심이고 상징적 내용"이라며 "이것을 빼고 법안을 처리하려는 시도는 합의를 깨자고 하는 것이자, 연금개혁안 처리를 기다리는 국민들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연금개혁안 파행을 두고 정치권에선 여야 모두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원인 제공은 야당이 했다. 위헌 논란이 자명한 사안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입법 과정을 감안하면 국회가 행정부의 시행령에 손을 대겠다는 요구는 어불성설이다. 통상 법률을 만들 때는 중요한 사항을 먼저 법률에 명시하고 보다 구체적인 사안은 법률을 집행하는 행정부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시행)령'으로 만들도록 행정부에 위임한다. 이른바 위임입법이다.

국회가 필요한 사안이 있으면 법률을 만들 때 시행령으로 위임하지 않고 모두 조항으로 표현하면 된다. 시행령으로 규정할 것이 없도록 법으로 모두 규정하면 시행령을 두고 갑론을박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세월호 진상조사와 관련한 법률을 만들 때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 야당이 법률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시도를 한 것이다.

여당에 대한 질책도 크다. 정국을 풀어가야 할 여당이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작은 사안에 집착해 판을 깼다는 지적이다. 당초 새누리당은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처리하면서 시급한 민생현안까지 함께 처리하고자 했다. 특히 경제회생을 위한 각종 입법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당이 나중에 짚어도 될 위헌 논란을 키워 여야 합의안을 깨는 패착을 범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여야 협상결렬에 따른 정국혼란은 온전히 여당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여당 관계자는 "일단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시급한 경제입법을 마친 뒤 위헌 논란을 벌여도 늦지 않았을 것"이라며 "여당이 야당과의 합의를 깨는 일이 잦아서는 정국을 이끌어 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광준 기자 jun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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