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맛에 단골] 서문시장 미싱골목 업주 '미림'

입력 2015-05-28 05:00:00

일을 떠나 미림을 통해 친근해진 세 남자, 전제선
일을 떠나 미림을 통해 친근해진 세 남자, 전제선'박수원'나상열 씨(왼쪽부터). 세 남자는 돈가스와 함께 모밀국수를 즐겨 먹는다.
여름철 미림에서 특히 인기있는 메뉴인 모밀정식. 시원한 모밀국수와 유부초밥이 함께 나온다. 나성현 미림 대표 겸 주방장.
여름철 미림에서 특히 인기있는 메뉴인 모밀정식. 시원한 모밀국수와 유부초밥이 함께 나온다. 나성현 미림 대표 겸 주방장.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멋이 있다. 이런 걸 두고 클래식이라 부른다. 세상에 나온 지 약 300년이 지난 모차르트의 음악은 아직도 듣는 이에게 감흥을 준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식당이 생겨나고, 온갖 신메뉴가 개발되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 있다. 돈가스가 그렇다. 돈가스는 추억의 음식이다. 코돈부루, 김치코돈부루 등 돈가스에 온갖 변주가 있지만 어린 시절 생일날 어머니 손잡고 따라간 레스토랑의 '그냥' 돈가스만 못하다. 이번 주는 '그 시절 그 돈가스' 맛을 고이 간직한 '미림'을 찾았다.

◆서문시장 레스토랑=박수원(57), 전제선(58) 씨는 대구 서문시장 미싱골목에서 재봉틀을 파는 동종업계 이웃사촌이다. 이 두 사람 모두 친한 남자가 있다. 바로 거래처 직원 나상열(51) 씨. 세 남자에겐 일 외에도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미림이다. 사실 세 남자는 서로 미림의 단골이란 걸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세 남자가 함께 식사를 하러 간 곳이 미림이었다.

박 씨는 "미싱골목 상인들은 3천원짜리 국수가 주식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중요한 손님이 오면 돈가스를 대접하러 미림에 온다"며 "주변에 손님을 모실 만한 깔끔한 식당이 없기도 하지만 맛없는 식당이라면 손님을 데리고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림은 대구에서 옛 돈가스의 맛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집이다. 사실 돈가스는 느끼한 뒷맛 때문에 성인들이 그리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다. 그리나 미림의 돈가스는 기름기 없는 로스용 고기를 연하게 튀겨 뒤끝이 깔끔하다. 여기에 입안을 감싸는 소스 맛도, 걸쭉한 브라운소스가 덮인 외양도 엄마 손에 이끌려 간 레스토랑에서 가슴 콩닥이며 '칼질'하던 때 그대로다.

전 씨는 "일 끝나고 가족들과 함께 밥 먹으러 들르기도 하는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 집 돈가스는 다 좋아한다. 게다가 겨울에는 오뎅탕, 여름에는 모밀국수도 별미다"며 "돈가스를 먹고 입가심으로 모밀국수를 먹으면 딱이다"고 했다.

◆50여 년을 이어온 돈가스 맛=미림은 1962년 지금의 자리에 처음 문을 연 이래 50년 넘게 같은 맛을 지켜왔다.

현재 미림의 주방장이자 대표인 나성현(48) 씨의 부친 고 나경수 씨는 우리나라 돈가스 1세대였다. 나 대표의 부친은 한국전쟁이 휴전하고 대구 중구 향촌동에 육군본부가 있을 때 돈가스에 입문했다. 고 나경수 씨는 당시 최고의 돈가스 기술을 가졌다고 알려진 고 김정덕 씨에게서 돈가스를 배웠다. 2대째인 나 대표는 여전히 부친이 조리하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돈가스 고기를 다지는 기계가 있지만 50년 전처럼 유리병으로 고기를 다지고, 칼로 저며 낸다. 빵가루를 곱게 만들려고 손으로 체에 치는 것까지도. 그래서 나경수 씨가 없는 지금도 미림의 돈가스 맛은 나경수 씨 생전 그때 맛과 그대로다.

옛 조리 방식을 따른다고 미림마저 '늙은' 식당인 것은 아니다. 현재 미림의 주 고객층은 20, 30대이다. 도시철도 3호선 개통으로 서문시장으로 데이트 나온 젊은 층, 주머니가 얇은 학생들까지 미림으로 드나든다.

나 대표는 "부친이 살아계실 때만 해도 어린 시절 향수를 찾아서 온 40대, 미림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찾아오던 단골이 많았지만, SNS를 통해 미림이 젊은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면서 이제는 손님층이 젊어졌다"며 "좋은 재료로 정성 들여 조리하다 보니 옛 손님과 젊은 손님 모두를 끌어당길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100년 식당의 꿈=나 대표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미림이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 번성해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것? 아니다. 미림을 100년 식당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실 나 대표가 처음부터 요리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한때 나 대표도 '넥타이 부대' 부대원이었다. 그러다 일본의 몇 대째, 수백 년을 이어가는 식당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다.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부친의 식당을 이어가겠노라'고 선언했지만, 부친은 완강하게 반대했다. 2년간 끈질기게 부친을 설득했지만, 상황은 변함없었다. 나 대표는 조리사 자격증을 획득함으로써 부친에게 자신의 의지를 보였다. 그 결과 2001년 처음으로 미림의 주방에 입성할 수 있었다. 나 대표는 "주변에 식당이 많아져도 전통은 무시하지 못한다는 걸 미림을 통해 배웠다"며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에게 강요하고 싶진 않지만, 아들이 미림을 이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고 했다.

▶돈가스 7천원, 오뎅정식 9천원, 모밀정식 1만원, 오뎅전골 2만5천원

▷영업=오전 11시 30분~오후 9시 30분

▷규모=70석

▷주차=식당 옆 유료주차장 이용(1시간 무료 주차증 제공)

▷문의=대구시 중구 국채보상로 93길 6(대신동 138), 053)554-6636

◆'이맛에 단골!' 코너는 독자 여러분의 참여로 이뤄집니다. 친목단체, 동창회, 직장, 가족 등 어떤 모임도 좋습니다. 단골집을 추천해주시면 취재진이 소정의 절차를 거쳐 지면에 소개해 드립니다.

▷문의 매일신문사 특집부 053)251-1582~4,

이메일 weekly@msnet.co.kr

사진 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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