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면…

입력 2015-05-27 05:00:00

서울에서 내려온 한 인사가 밴드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구구절절 지역과 국가에 대한 극진한 애정과 헌신이 묻어나는, 훌륭한 글이었다. 그것뿐이었으면 그분의 충정에 감동을 하였겠지만, 말미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지역과 국가를 위해 뜻있는 일을 하고 싶다'. 한마디로 내년 총선에 출마할 테니 모임 멤버들이 도와달라는 취지였다.

그러자 한 멤버가 이런 댓글을 올렸다. 'A고등학교에서 한자 능력시험을 치렀다. 정답자는 공짜로 중국 유학을 갈 수 있는 특전까지 주어졌다. 문제를 제대로 푼 학생은 한 명 뿐이었다.'

다음에 열거되어 있는 사자성어들을 하나로 통합해 하나의 사자성어로 만드시오. 마이동풍(馬耳東風) 우이독경(牛耳讀經) 유야무야(有耶無耶) 이전투구(泥田鬪狗) 용두사미(龍頭蛇尾) 일구이언(一口二言) 조령모개(朝令暮改) 당동벌이(黨同伐異) 안면박대(顔面薄待) 뇌물수수(賂物收受) 우왕좌왕(右往左往) 갈택이어(竭澤而漁)….

(이 난해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독자분들도 한번 맞혀보시기 바랍니다. 정답은 바로 '국회의원'(國會議員)이라고 합니다. 의미가 그다지 좋지 않은 사자성어의 총합이 국회의원이라고 하니 우리 사회의 정치 혐오감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필자는 이 글을 보내준 분에게 물어봤다. 큰 꿈을 가진 정치 지망생에게 너무 직설적인 공격을 한 것이 아니냐고 하자, 그분은 이렇게 잘라 말했다. "서울에 살다가 고향에 자주 내려와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는 분이 국회의원이 되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족은 서울에 놔두고 혼자 주소 달랑 옮겨놓고는 지역민의 심판을 받겠다니 말이 되나. 기본이 안 돼 있다."

공감할 만한 말이다. 수도권에 살면서 그곳에 세금을 내고 그곳 사정에 훨씬 더 밝은 '서울TK'들이 대구경북을 망쳤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서울TK'들이 자행한, 어처구니없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지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여당 대표를 지낸 유명 정치인의 해프닝이 대표적이다. 대구에서 내리 5선을 했다가 수도권 보궐선거에 나서면서 '분당 토박이 15년'을 슬로건으로 내건 분이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고육지책이었겠지만, 한때 대선 후보를 꿈꾸기도 했던 정치인의 행보로는 정말 유치찬란했다. 이 해프닝으로 그 정치인이나 대구시민, 모두 엄청난 상처를 받았다. 그는 그 슬로건 때문에 여당 텃밭에서 지고 정계은퇴를 했고, 대구 사람들은 '자존심도 없나'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호남 출신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다.

필자는 선거에 지자마자 바로 주소를 옮기고 그 뒤에는 고향을 돌아보지도 않은 '서울TK'들을 숱하게 봐왔다. 졌다고 하면 이해할 구석도 있지만, 이겨놓고도 주소를 옮긴 새누리당 국회의원도 있다. 지난 총선에서 힘겹게 야당 후보를 이겼기 때문인지 선거 뒤 실거주지로 주소를 옮겼다고 한다. 그는 총리 하마평에 줄곧 오르내리던 유력한 정치인이다. 지금도 혼자 달랑 내려와 각종 모임, 동창회, 노인대학, 경로당을 오가며 표를 달라는 국회의원, 정치지망생이 대다수다.

사실 주소지 이전이 정치인의 중요한 덕목은 아니다. 가족들의 생활공간은 수도권이라고 하더라도, 정치인 자신이 지역민과의 공감대, 지역 현실을 바로 알고 지역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몇 배 더 중요하다. 말로는 지역민과 소통한다고 해놓고, 정서와 행동은 수도권, 혹은 개인 이익에 충실한 '철새 정치인'을 숱하게 봐왔기에 정말 걱정스럽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려는 자는 최소한 자신의 생활근거지와 정서는 지역에 뿌리박고 있음을 입증할 수 있을 경우에만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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