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평생을 다리 절며 산 배희숙 씨

입력 2015-05-27 05:00:00

점점 굳어가는 다리…70여 년 소아마비의 고통

평생 다리를 절며 산 배희숙 할머니는 인공고관절이식 수술 이후 날로 쌓여가는 병원비에 눈물짓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평생 다리를 절며 산 배희숙 할머니는 인공고관절이식 수술 이후 날로 쌓여가는 병원비에 눈물짓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한 달 넘게 병원에서 지내는 배희숙(71) 할머니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음껏 걸어본 적이 없다. 할머니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어린 시절 앓은 소아마비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평생 다리를 절며 살았다.

할머니에게는 피붙이가 없다. 전쟁으로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면서 평생 친척 집과 남의 집 가사도우미를 하며 이집저집을 떠돌았다. 행복한 삶은 바란 적도 없다는 할머니는 그저 몸이라도 성해 혼자 힘으로 돌아다닐 수만 있다면 그 이상 소원이 없겠다며 한숨을 내쉰다. "몸이라도 건강하면 내 한 몸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요.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을 보면 내 운명이 너무나 원망스러워요."

◆남의 집 셋방살이하던 어린 시절

할머니는 여태껏 교실 문턱을 넘어본 적이 없다. 전라남도 영광에서 태어나 6'25전쟁 피란길에 부모님과 헤어져 고아가 됐다. 그 길로 친척들의 손에 이끌려 작은아버지 집으로 보내졌다.

6살 어린 나이에 남의 집 셋방살이를 시작한 탓에 철도 빨리 들었다. 집안 어른들의 결정으로 학교는 못 다녔지만 먹여주고 재워주는 친척 어른들께 보답하고자 묵묵히 집안의 빨래, 청소, 부엌일을 도맡아 했다.

"남들과 걸음걸이도 달라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과 어울린 기억이 거의 없어요. 전쟁 후 모두 넉넉지 않은 형편인 데다 저는 다리도 아팠으니 학교를 못 다녀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 다독였어요."

그러던 중 할머니에게도 가정을 꾸릴 기회가 찾아왔다. 집안 친척의 소개로 당시로선 늦은 나이인 29살에 10살 많은 남자를 소개받은 것이다.

하지만 결혼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불행이 시작됐다. 남편은 이미 결혼도 한 차례 했고 자녀도 있는 홀아비라는 사실을 숨겼다. 게다가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둘렀다. 결국 결혼 1년 만에 이혼을 결심했다.

이혼 후 부끄러운 마음에 친척들과 인연을 끊었고 가사도우미, 파출부로 남의 집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식당이나 공장에서는 걸음걸이가 온전치 않은 할머니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집안일밖에 없어 밥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집만 있으면 무조건 들어가 허드렛일을 도왔다.

"남들은 10분이면 갈 거리를 30분 넘게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개울에 빨래하러 다녔어요. 길에 작은 턱이 있어도 잘 걸려 넘어지곤 했는데 그러면서 뼈가 더 약해진 것 같아요."

◆돌봐줄 사람 없이 늘어만 가는 치료비

평생 어렵게 살던 할머니에게도 한때는 주위의 도움으로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18년 전 할머니를 안타깝게 여긴 한 복지관에서 인공 고관절 수술비를 지원해 준 것이다. 삶은 여전히 팍팍했지만 파출부 일을 하면서 내 한 몸 건사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하게 여겼다.

5년 전에는 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가족도 생겼다. 시장에서 우연히 전 남편의 딸과 마주쳤는데, 서로의 모습을 바로 알아봤던 것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였지만 의지할 친척이 없던 딸은 할머니를 친정어머니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전 할머니는 다리에 또 이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난달 집에서 자리를 옮기려고 발목을 드는 순간 발목에서 딱 하는 소리가 나면서 갑자기 발가락이 오그라들었고 자리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인공관절 수술을 하고 10년이 지나면 교체 수술을 해줘야 하는데 치료비 걱정에 내버려둔 탓에 기어이 문제가 생긴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고 다리도 부풀어 올랐지만 치료비가 무서웠던 할머니는 딸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다 전화 목소리가 심상찮다고 느낀 딸이 할머니 집을 찾았고 다리가 퉁퉁 부은 채로 누워 있던 할머니를 발견했다. "병원비가 무서워서 다리에 이상이 온 뒤 이틀간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했어요. 딸에게 부담을 줄까 봐 아프다고 연락을 할 용기도 나지 않았어요."

지난달 수소문 끝에 주민센터에서 긴급의료지원비를 받아 인공 고관절 이식 수술을 마친 할머니는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수술비뿐만 아니라 점점 쌓여가는 진통제, 입원비, 보조기 비용 등 날로 쌓여가는 병원비 때문이다.

또 수술 뒤 거동이 어려워 당분간은 간병인이 직접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데 하루 8만원이나 되는 비용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또 퇴원 후에는 요양병원에 다시 입원해 새로 맞춘 보조기를 다리에 차고 휠체어에 스스로 오르내리는 재활 기간도 거쳐야 한다.

"딸도 집에서 부업을 하는 어려운 형편인데, 늘어나는 병원비가 너무 무서워요. 뒤늦게 인연을 맺은 딸에게도 부담만 주는 것 같아 미안하고…. 치료비가 늘어나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답답하기만 해요."

허현정 기자 hhj224@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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