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도 생기지 않을 일이지만, 경상북도지사와 대구시장 자리를 두고 선택하라면 당연히 대구시장을 고르겠다. 조금 바꿔, 경북도지사와 대구'경북 기초자치단체장 자리 가운데 고르라 해도 역시 기초자치단체장 자리를 선택하고 싶다. 이는 도지사 자리를 낮춰보는 것이 아니라 영역 문제 때문이다.
사실 도지사는 뭘 하고 싶어도 그 뜻을 펼칠 땅이 없다. 이는 대구시장도 마찬가지지만 실제 행정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대구시장은 대구시 전체를 놓고 SOC 사업 확충이나 기업 유치, 도시계획 등 구'군과 무관하게 큰 틀에서 여러 정책 시행이 가능하다.
반면, 경북도지사는 그렇지 않다. 대구시와는 달리 23개 시'군으로 쪼개져 이해관계가 확연히 다른 경북도 전체를 한 틀에 묶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러다 보니 정책이라는 것도 환동해권 개발, 유교문화권 개발 등 몇십 년에 걸쳐 몇조원을 투자한다는 식이어서 도민의 체감(體感) 강도는 많이 떨어진다.
또한, 기초자치단체도 덩치가 좀 큰 사업이 있으면 곧장 중앙정부와 독자적으로 예산 받기 노력을 많이 해 도의 역할은 한계가 있다. 한때 광역도의 무용론이 나온 것도 도의 역할이 급격하게 줄어든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
현재 경북도의 수장은 3선의 김관용 도지사다. 김 지사는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세무공무원을 거쳤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민주자유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후보로 기초자치단체장 3선, 광역자치단체장 3선을 이뤘다. 자치단체장 6선은 전국에서 김 지사가 유일하다. 1998년 구미시장 선거에서는 무투표로 당선했고, 경북도지사 후보였던 2006, 2010년에는 전국 최고 득표율이었다.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로는 혼자 3선에 도전했던 지난해 선거에서는 이낙연 전남도지사에 불과 0.3%포인트 뒤진 77.7%로 전국 2위였다.
올해 73세인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장 가운데 제일 나이가 많다. 226명인 기초자치단체장까지 다 포함해도 김 지사보다 연장자는 문동신(77) 전북 군산시장, 정상혁(74) 충북 보은군수뿐이다. 대구'경북 안에서 도지사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자치단체장은 한동수(66) 청송군수로 일곱 살 차이다. '타지 10년차는 벗'이란 말도 있지만, 요즘 세상에서는 벗도 못할 차이다.
김 지사는 그동안 지위나 경륜뿐 아니라 나이까지 더해도 대구'경북의 '어른'으로 모자람이 없었다. 그런데 6선이어서 뒷심이 떨어진 것인지, 선출직으로는 더 나아갈 곳이 없는 탓인지 곳곳에서 애타게 찾는 데도 당최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인다.
지금, 경북의 여러 지자체는 정부와 기업, 다른 지자체와의 이해관계 충돌로 고민이 많다. 군인체육대회로 국방부와 삐걱거리는 문경시나 기업 유치 문제로 소송까지 당한 상주시, 취수원 이전 문제로 갈등을 빚는 대구시와 구미시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자치단체의 혼자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이런 일은 '어른'인 김 지사 몫이다. 중앙정부와 조율하고 기업 CEO와 자치단체장을 만나 설득하는, 조정자 겸 화해자 역할이 필요해서다.
혼란할수록 사회는 '어른'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어른의 덕목은 나이나 높은 관직이 아니다. 화해와 설득, 때로는 따끔한 호통을 통해 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는 지혜가 덕목이다. 앞서 거론했지만, 도는 덩치가 크지만, 도지사가 해야 할 일은 조목조목 챙겨야 하는 기초지자체장보다 그리 많지 않다. 어젠다를 개발하고, 정부와 기초지자체, 또는 기초지자체 간의 가교 역할을 잘하는 것만으로도 빛난다.
여러 현안은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려 도지사가 나서도 해결이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때문에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해도 김 지사가 손해 볼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이런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 노력을 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더 큰 중책도 충분히 해낼 능력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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