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에 의해 유대인 600만 명이 희생된 '홀로코스트'는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 내에서 거의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유대인 단체들도 대학살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에 반대했다. 이런 분위기는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초반부터 바뀌기 시작한다. 미국과 유럽 각국에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세워지는 등 '홀로코스트 붐'이 일었다.
그 계기는 1967년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6일 전쟁'이다. 이스라엘의 막강한 군사력이 입증된 이 전쟁을 통해 아랍과 이스라엘은 정반대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아랍은 인류 발전에 역행하는 야만적 유목민 집단이고 이스라엘은 이들에 맞선 미국과 서구 문명 수호의 제일선이란 것이다.
이런 지위를 갖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도 필요했다. 바로 '영원한 희생자로서의 이스라엘'이다.
그 선두에 선 이데올로그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198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엘리 위젤 등 우파 유대 민족주의자들이다. 이들은 홀로코스트를 "역사상 비교 대상이 없는,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무비(無比)의 범죄" "세계의 영구적 반유대주의의 산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를 '아랍 세계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에 투영해 이스라엘을 "언제 다시 홀로코스트를 당할지 모르는 고립무원의 피해자 집단의 보호자"로 탈바꿈시켰다.
이러한 '희생자 이미지'는 팔레스타인 사람에 대한 이스라엘의 인권침해와 학살을 정당화하고 이에 대한 비판은 모조리 '제2의 홀로코스트를 바라는 일' '반유대주의'로 몰아세우는 요술지팡이가 됐다. 이러한 상징조작을 미국 태생 유대인 노먼 핀켈스타인은 '홀로코스트 산업'이라고 비판했다.
그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 씨가 권력이 자기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노빠'들이 만들어낸 '노무현=희생자' 이미지의 뿌리 깊음을 다시 본다. 이쯤 되면 '노무현 산업'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권력이 아니라 가족들의 금품 수수 사실과 그것이 몰고 온 도덕적 절망감이다.
노 전 대통령은 투신하기 전인 2009년 4월 7일 개인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올렸다. "저와 제 주변의 돈 문제로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리고 있습니다.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더욱이 지금껏 저를 신뢰하고 지지를 표해주신 분들께는 더욱 면목이 없습니다. 깊이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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