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협약도 필요하나 법치가 우선이다

입력 2015-05-25 05:00:00

1957년 청도생. 경북고·영남대 경영학과. 행시 23회. 이명박정부 청와대 인사기획관
1957년 청도생. 경북고·영남대 경영학과. 행시 23회. 이명박정부 청와대 인사기획관

지방자치제 실시 후 업무협약 활성화

법치행정은 뒷전 전시행정으로 남용

헌법상 부처 간 서로 협력해야 되는데

굳이 업무협약 맺어야 할 필요 있을까

지난주 보도된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끌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국방부가 창조경제와 창조국방의 공동가치 창출을 위하여 업무협약서에 서명하고 기념 촬영한 장면이다. 업무협약은 개인이나 단체 또는 국가 간에 협상을 통해 공동의 목표와 이익을 함께 실천해 나갈 것을 다짐하는 협정으로서 양해각서(MOU)라고도 한다. 체결 당사자들이 서로 합의한 대로 잘 이행하여 신뢰를 쌓으면 좀 더 진전된 규범으로 발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업무협약을 통한 행정은 협치(govern

ance)를 추구하는 민선 지방자치제 실시 후 크게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주민의 신임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는 자치단체장의 입장에서 유관기관과 상생 과제를 협의하고 악수하는 모습은 일하는 기관장을 각인시킬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약의 본질은 서명 당사자 간의 약속에 불과하다. 재임 중 기관을 대표하여 서명을 하더라도 법적 구속력이 없으므로 어느 한쪽이라도 신의를 저버리거나 교체될 경우 언제든지 효력을 잃게 된다. 또 협약식이 전시행정으로 남용될 경우 법령에 의해 설치된 행정기관에 적용되어야 할 법치행정 원칙이 경시될 우려가 있다. 일부 광역자치단체에서 법적 근거 없는 지방공기업 사장 등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협약에 의해 위법하게 실시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물론 법령의 수권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공법인인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 책임으로 다른 공사(公私) 기관과 필요한 협약을 체결하는 일은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헌법인(人)'이 된 국가를 구성하는 행정 각 부 사이에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헌법 제89조에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 주요 사항이 열거되어 있는바, 행정 각 부의 장관은 정부 수반인 대통령에 의하여 임명된 국무회의를 구성하는 국무위원을 겸한다. 특정 사안에 한정된 것이나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의안을 심의해야 할 국무회의 구성원의 일부가 협약을 체결하면 오해를 살 수 있다. 이는 현행 법령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행정절차법 제7조는 행정청 간의 업무협조 의무를, 제8조는 필요 시 다른 행정청에 응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각각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동일 정부가 공유하는 목표와 가치를 함께 달성하도록 관계 행정청은 서로 협력할 법적 의무가 있는데, 굳이 별도의 협약을 맺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모든 부처가 협약을 체결해야 형평에 맞을 것이다.

2000년대 들어 민간 부문의 급속한 발전, 국회의 정부 통제 확대, 행정의 투명성 제고 등에 따라 공직사회가 상당히 위축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공무원들에게는 신바람 날 일이 많지 않다. 오히려 나날이 복잡'다양해지는 국내외 현안을 시급히 조정'해결해야 할 책무만 급증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사정기관의 감찰 및 감사활동은 책임 규명에 초점을 둠으로써, 공무원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조차 사후 문책을 회피할 수단부터 미리 강구해 놓고 처리한다. 불필요해 보이는 협약을 체결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 생각된다.

정부의 각종 정책은 현재는 물론 미래 세대를 위한 것도 많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동시대의 사람들이 그 정책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정치적 과정을 거쳐 확정된 정책은, 목표 대비 산출물을 비교 평가할 수는 있지만 감사 대상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공직자가 정책을 추진하면서 관계법령에 따라 배정된 예산을 적법하게 집행한 경우 법적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헌법 제97조에서 감사원의 역할을 '직무감사'가 아니라 '직무감찰'로 규정한 이유는, 정책 즉 직무를 감사하라는 것이 아니라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금품 수수 등 비위 행위가 있는지 잘 감찰하여 대상자를 조치하라는 뜻이다. 성실히 일한 결과에 대해서까지 주관적 가치판단으로 조사'처벌하게 되면 공직사회를 무사안일하게 만들 뿐이다.

김명식/대구가톨릭대교수·경찰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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