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갓길에 문득 복도에 서서 굳게 닫힌 현관문들을 바라봤다. 멀리 까마득히 복도 끝까지 명패 대신 번호표를 단 획일화된 현관문들을 보고 있자니 참 사람냄새 안 나는 대형 개미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룸촌은 사람이 사는 대형 알집 같다. 아침마다 일개미들이 부화해 일하러 나가니까.
개미집에서 반복되는 저마다 삶의 작업들은 금쪽같은 하루의 목숨을 감쪽같이 삼켜 버린다. 여유는 아직 사치다. 미생의 하루를 완성하기에는 밤이 너무 짧다. 창문 너머로 저무는 해를 껴안을 새도 없이, TV를 애인 삼아 성장하는 혼자 살아가는 청년들은, 청춘을 위로받을 틈도 없이 홀로 점호를 외치고 잠이 든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우주를 갖는 것과 같다고 했다. 소우주를 갖는 일이란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일진대, 정작 우리는 마음 안에 찬란한 우주를 가둬만 놓은 채 다스리지 못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혜민 스님은 '멈춤의 미학'을 강조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난로처럼 대하길 권했다. 너무 가까우면 상처를 입고, 또 너무 멀어지면 냉기가 흐르기 때문이다. 한겨울 차가운 냉기 속에서 온몸을 불태우는 희생정신으로 무장한 난로 앞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따뜻한 온기의 힘 덕분이다. 안도현 시인이 그토록 예찬했듯이, 뜨거운 사랑을 온몸으로 보여준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찰 수 있으랴.
반도체와 자동차 부품 등 세계 시장 점유율 상위 품목들을 보유한 대한민국의 영광스러운 기상 뒤에는 신생아 해외입양 세계 1위 같은 그늘도 있다. 여기에 글로벌 시대를 대비한 극성스러운 조기 유학 세태까지 더해지며, 우리나라를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청년들이 실종하는 인구 쇼크 위기의 국가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한 사람 대한으로 품지 못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그렇다고 우물 안에서 헤엄치기엔 하늘 아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반드시 찾아야만 하는 청년실업 시대를 바라보며 청년들의 우주에 응원의 로켓을 쏘고 싶다.
가슴에서 30㎝ 정도 떨어진 머리는 불타오를 금요일 밤의 열기를 차갑게 식혀버리고, 오래되어 삐걱대는 관절염 걸린 관절처럼 유연하지 못하다. 마음 안에 있어야 할 우주의 아틀리에는 어디 있는가. 점점 사막처럼 건조해지고 황사 먼지 가득 날리는 청춘의 척박한 마음에도 청량한 단비가 내리길 소원해본다. 불타는 연탄과 같이 은하계의 수많은 행성 중 별은 스스로 빛을 낼 줄 아는 고온의 천체임을 잊지 말자. 우리도 언젠가는 세계 속에서 스스로 빛나는 행성이 될 것이다.
암 투병에도 사랑의 꽃비를 만끽하던 미국의 시인 '알프레드 디 수자'가 강조한 삶의 구절이 있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뮤지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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