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왔으면 좋겠다.
나는 치명적이다.
네게 더 이상 팔 게 없다.
내 목숨밖에는.
목숨밖에 팔 게 없는 세상,
황량한 쇼 윈도 같은 나의 창 너머로
비 오고, 바람불고, 눈 내리고,
나는 치명적이다.
네게, 또 세상에게,
더 이상 팔 게 없다.
내 영혼의 집 쇼 윈도는
텅 텅 비어 있다.
텅 텅 비어,
박제된 내 모가지 하나만
죽은 왕의 초상처럼 걸려 있다.
네가 왔으면 좋겠다.
나는 치명적이라고 한다.
(전문. 『내 무덤, 푸르고』. 문학과 지성사. 1993)
아픈 사람만이,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픔을 식별하고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예외적으로 상상력의 천재들은 경험해 보지 않아도 세상의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이 시인은 아파 본 사람이고, 지금도 아프다. 1993년의 이 시집에서 시인은 이라고 썼다. 그러나 시 혹은 시쓰기는 결코 우리를 일으켜 세우지 않는다. 시 일반 혹은 그의 시는 그에게 치명적이었고, 치명적인 그의 시는 우리에게도 치명적이다.
오랜만에 열어본 그의 이 시가 아직 아프다. 아픔이 식별된다는 것은 내가 아프기 때문일 것이다. 아픔을 미학적으로 치장하는 것은 아파 보지 않은 자들의 허세일 뿐이다. 아픈 것은 아픈 것이다. 은 그 어떤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아무것도 팔 게 없어 텅텅 빈, 목숨밖에 팔 게 없는 삶이 도처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가 왔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그 누군가는 누구일까? 우리는 그를 모르지만, 이미 다 알고 있기도 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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