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차피 베어낸 가로수 다시 심는다면

입력 2015-05-21 05:00:00

2015년 5월 19일 자 매일신문 사회면 '동대구역 가로수 200그루 싹둑'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접하면서 언뜻 공무원 시절 옛일이 생각나 언급해 본다. 먼저 2007년에 발표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회의(IPCC) 자료에 따르면 1906~2005년까지 100년 동안의 기온은 전 지구적으로 약 0.74℃ 상승하였다. 중위도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1904~2000년까지 평균 1.5도 상승하였다. 이는 전 지구적 온난화 추세를 상회하고 있다. 인구증가와 지금의 경제 산업 구조가 지속되는 한 2100년에는 전 지구적으로 2~4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고, 국지적으로는 8도까지 올라가는 지역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임업연구원에서 1966년과 2003년을 기준으로 나무의 개엽일과 개화일을 비교한 것에 따르면, 개엽일은 70수종 중 65종이 3일에서 43일 빨라졌고, 82종 중 61종이 1일에서 48일 개화 시기가 빨라졌다는 분석 결과가 있었다. 개엽일과 개화 시기가 빨라지는 추세, 즉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은 지구온난화의 증거다. 다시 말하자면 식물의 적지(適地)가 바뀌는 셈이다.

과거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지정 당시 가로수 수종 선택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소나무, 튤립나무, 자작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거론돼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런 가운데 필자는 해당 부서에 가시나무를 제안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역의 조경 및 산림 분야 교수를 찾아가 자문하는 등 가시나무를 선정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결정된 후 식재 과정에서 해당 규격의 수량이 턱없이 모자라 느티나무로 식재한다기에 무척 아쉬웠다. 다만 버스 승강장 네 군데에 가시나무를 식재해 조금은 위로가 됐지만 아직도 미련은 여전하다. 그 뒤 달구벌대로의 어느 짧은 구간에 가시나무 식재를 유도해봤고, 앞산순환도로 공영주차장에도 인도를 만들면서 가시나무를 심었다. 시가지는 물론 비교적 기온이 낮은 앞산에도 5년 넘은 지금껏 사계절 푸른 가로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봄에는 두류산에서 특별한 나무 자생지를 발견하고 면밀히 관찰 조사했다. 식재한 것이 아닌 순수 종자가 발아해 스스로 자라는 가시나무류였다. 난대상록활엽수종인 만큼 자생 자체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지피물을 뚫고 이제 막 움튼 1년생에서 이미 10년 넘은 것도 있었다. 이런 현상이 여실히 나타나고 있는 대구는 이미 난대상록활엽수종의 북방한계선을 통과한 지역이자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따른 엄청난 생태 적지의 변화를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구에는 각종 공원과 녹지에 이미 많은 가시나무류를 식재했다. 거기서 새들이 익은 열매를 따먹고 배설해 매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러니 목서나 호랑가시나무가 없으란 법도 없다. 앞으로 또 다른 산으로 확대해 가면서 면밀히 살펴볼 것이다.

이참에 동대구역의 베어낸 가로수 자리에 다시 식재한다면 가시나무가 어떨까 싶다. 사계절 푸르러서 도시민의 정서함양은 물론 겨울철 회색 빌딩에서 도심의 삭막함을 벗게 하고, 푸른 대구 이미지 각인에도 한몫할 수 있으리라. 가시나무는 중앙로의 가로수로 이미 학계로부터 자문을 거쳤으며, 두류산에서 스스로 발아해 토착 수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듯 이론은 물론 자생력까지 병행 검증한 셈이다. 푸른 이파리에서 윤기 반질거리고 그늘 두툼한 가로수는 상상만 해도 맘이 설렌다. 한편 두류산의 난대상록활엽수 발견지에는 중국단풍나무 모수에서 근경으로 번진 어린중국단풍나무가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하다. 자생 수종을 해코지하므로 제거한다면 두류산은 난대수종 산림으로 유도될 것이다.

권영시/시인·한국미래숲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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