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주점의 몰락…김영란法 앞둔 밤거리 문화

입력 2015-05-21 05:00:00

"부어라 마셔라" 대신 "즐겨라" 직장인들 테마 술집으로 발길

'취하도록 마시고 노래로 끝나던 술 문화'가 사라지면서 술집 지도가 바뀌고 있다. 도심 곳곳에 다양한 테마의 술집들이 생겨나는 반면 기존 '유흥주점'엔 찬바람이 돌고 있다.

고급 술집이 몰려 있는 대구 동구'수성구에선 유흥주점 '권리승계'가 급증하고 있다. 허가제인 유흥주점은 폐업 신고보다 권리를 넘기는 권리승계가 대부분으로, 지난 2010년 15건에 그쳤던 수성구 유흥주점 권리승계 건수는 지난해에만 68건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동구 역시 2011년 8건이던 유흥주점 권리승계 건수가 지난해엔 54건으로 늘어났다.

구청 위생과 관계자는 "접대부가 나오는 고급 유흥주점마다 예전보다 매출이 많이 줄어들었다"며 "장사가 잘되던 시설에는 유흥주점 권리금만 수억원에 달하고 매물도 없었지만 요즘은 매출이 격감하면서 업주가 자주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흥주점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원인은 달라진 술자리 문화다. 수성구 한 유흥주점 업주는 "금융위기 여파로 손님이 줄기 시작해 지난해 세월호 사건 이후에는 절반 이상 발길이 끊겼다"며 "특히 단체로 오는 접대 손님이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사라졌다"고 밝혔다.

실제로 중소 자동차부품업체 이사인 김모 씨는 거래처 관계자와의 술자리를 '맛집 투어'로 바꾼 지 오래다. 김 씨는 "예전에는 거래처 손님과 만나면 주로 유흥주점을 찾았지만, 지난해부터는 맛집을 찾아 식사를 한 뒤 조용한 분위기의 와인바 등을 찾는다"고 말했다.

달라진 술자리 문화를 대변하는 대구의 대표적 명소는 중구 '대봉동'이다. 20일 오후 8시 30분 대봉도서관 인근 도로. 이곳 양옆에는 카페와 맥주집, 와인바 등 다양한 테마의 술집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30, 40대 직장인들로 늘 붐빈다. 김정철(46) 씨는 "예전에는 손님이나 친구를 만나면 주로 수성구 주점을 갔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곳을 주로 찾는다"며 "도심에서 가깝고 가게마다 분위기도 좋은 데다 가격까지 저렴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테마의 술집들이 속속 생겨나는 반면 유흥주점은 더욱 '쇠락'할 전망이다. 김영란법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남의 눈을 의식해 평소에도 유흥주점을 거의 찾지 않지만 김영란법이 통과된 이후에는 더욱 몸을 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조용한 곳에서 술자리를 끝낸 뒤 2차는 노래방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노경석 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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