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24시-현장기록 112] 가정폭력, 혼자가 아닌 다 함께 극복해야 할 문제

입력 2015-05-21 05:00:00

지난 3월 초, 얼굴에서 눈물 자국을 채 지우지도 못한 한 피해자가 경찰서 민원실로 다급히 찾아왔다. 경찰서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펑펑 눈물을 쏟아내며 남편에게 죽을 뻔했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피해자를 일단 상담실로 데려가 진정시켰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만난 피해자의 남편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이따금 지나치게 흥분할 때가 있긴 했지만, 폭력성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결혼한 지 채 1년도 안 된 어느 날, 짧은 말다툼 끝에 격분한 가해자가 피해자의 따귀를 때린 후부터 결혼 생활은 지옥이 되었다. 피해자가 조금만 가해자의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해도 욕설과 폭언이 쏟아졌고 손찌검도 잦았다. 짧은 외출을 해도 '다른 남자가 있는 게 아니냐' '누구를 만나고 온 거냐'며 피해자의 외도를 의심하고 추궁하곤 했다.

10여 년을 살면서 아이도 둘이나 태어났지만 가해자의 의심과 집착, 폭력은 점점 심해졌다. 전화도 제대로 쓰지 못하게 했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막았다. 게다가 술만 마시면 난폭성이 더 심해져 식칼이나 골프채를 들고 위협하기 일쑤였다. "신고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나를 떠나면 끝까지 쫓아가서 죽여버리겠다" "아는 조폭이 많으니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라며 협박했다. 가해자는 아이들이 눈앞에 있든 없든 아랑곳하지 않고 폭력을 일삼았다.

피해자의 고통은 반 년 전 가해자가 직장을 잃으면서 더 심해졌다. 경찰서에 찾아오기 바로 전날 밤에는 피해자가 무어라고 한마디를 한 순간 이성을 잃고 마시고 있던 술병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내리치려 들기까지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가해자가 만취 상태라 빗겨나가기는 했지만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순간 피해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오랜 시간 '나만 이 고통을 참으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버텨 왔지만,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남겨질 아이들은 어떻게 될지….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사무쳐 어떻게든 탈출해야겠다는 절박한 마음에 경찰서를 찾아왔다며, 자신과 아이들을 살려 줄 사람은 경찰관뿐이라며 눈물로 도움을 요청했다.

피해자를 일단 관내에 '임시숙소'로 지정된 모텔로 안내했다. 임시숙소에는 최대 5일간 머무를 수 있고 이후에는 비밀이 철저히 보장되는 피해자 쉼터로 옮길 수 있다는 말에 보호자는 적잖이 안심한 듯했지만, 곧 남아 있는 아이들이 걱정이라며 얼굴을 흐렸다. 이에 피해자의 집 관할 지구대에 요청해 피해자와 집에 동행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1366센터 긴급쉼터에 인계했다. 피해자의 아이들은 폭력은 당하지 않았지만 장기간 폭력을 목격한 탓에 정신적 불안과 대인기피 증세를 보였다. 곧 지자체'NGO 등을 소집해 가정폭력 솔루션 팀(Solution-team) 회의를 개최해 피해자와 아이들에게 더 도움을 줄 방법을 강구했다.

'행복나눔센터'는 피해자와 자녀들에게 긴급생계비 90만원을 지원했고, 상담소에서는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을 회복시키기 위한 상담을 시작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두 아이에 대한 심리치료를 진행하기로 했다. 또한 아이들의 뒤처진 학업을 보충해 주기 위해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배움지도사'를 파견해 학습을 도와주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학교전담경찰관과 멘토-멘티 결연을 하여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멘토링을 실시하기로 했다. 신고한 사실을 알게 되면 가해자가 피해자의 부모에게까지 찾아가 보복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피해자의 부모가 거주하는 지역 관할 경찰서에 별도로 신변 보호조치도 요청했다. 가해자와의 이혼을 간절히 원하는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변호사와의 무료 법률상담을 주선해 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

가해자는 여성청소년수사팀에 가정폭력으로 입건되었고, 피해자와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규정된 임시조치도 신청했다. 그러나 가해자는 전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전화와 문자로 피해자와 아이들을 찾아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폭력이 재발하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피해자와 통화하던 중 가해자가 평소 주거지 인근 상가에서도 수시로 행패를 부렸다는 말을 듣고 형사팀과 협조하여 가해자를 '주폭'으로 체포'구속했다.

가정폭력이 범죄이자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로 인식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짧은 시간 동안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특히 최근 1, 2년 사이 가정폭력에 대한 상담을 받고 싶다며 경찰을 찾는 피해자들이 부쩍 늘고 있다. 대구 지역에서만 2013년 8천61건이던 가정폭력 112신고가 2014년에는 1만752건으로 증가했다. 숫자로만 보면 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점 가정폭력이 심각해지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피해자들이 참고 견디기보다는 해결책을 찾고자 하고, 가정폭력에 대처하는 사회의 의식과 여건이 성숙한 덕에 그동안 묻혀 있던 피해가 차츰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만약 가정폭력을 당했다면, 혹은 누군가 가정폭력으로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주저하지 말고 112로 신고해 도움받기를 권한다. 도움의 손길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으며 혼자만의 힘이 아닌 모두가 함께 나선다면 가정폭력은 훨씬 더 간단하고 안전하게 해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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