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실습을 시작한 의과대학 본과 4학년 때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고열과 오른쪽 옆구리 통증을 호소하셨다. 강의에서 배운 지식과 짧은 임상 실습을 토대로 좌우를 비교하며 옆구리를 두드려 보니 신우신장염으로 보였다. 소변을 받아 임상병리검사실에 검사를 의뢰해보니 소변에 백혈구가 많이 나타났다. 예비 의사는 진단이 맞다 싶었다.
의료보험이 전면 시행되기 전이라 의료비에 부담을 느껴 내과 레지던트 선배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가 추천해 준 대로 값이 싼 겐타마이신이라는 항생제 주사를 직접 아침저녁으로 놓아 드렸다. 어머니의 증세는 하루가 다르게 호전됐다.
그런데 1주일 정도 지나자 증상은 거의 좋아졌지만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며 일어나 걷지를 못하셨다. 아차 싶었다. 겐타마이신의 효능과 더불어 배웠던 부작용이 떠올랐다. 덜컥 겁이 났다. 어머니를 모시고 이비인후과 교수님의 진료를 받았다.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 진단해 본 결과 약물 부작용으로 신체 균형을 유지하는 내이의 전정기관에 손상을 일으킨 것이었다. 뚜렷한 치료 방법이 없다고 했다. 뇌혈류 개선제를 투여했지만 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은 몇 주가 지나도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검사와 투약에 드는 비용은 부담스러울 만큼 많았다. 3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걸을 수 있었고 6개월이 지나서야 병세가 나아지고 완전히 회복됐다. 어머니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지만 나도 날마다 죄스러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몸이 몇 개월 동안 불편하게 된 것이 내 불찰임을 아셨지만 아들이 마음 상할까 봐 내색하지 않으려 애를 쓰셨다. 평생 자식의 바른 성장과 교육을 위해 당신의 평안은 잠시도 누릴 생각을 않으셨던 어머니. 나는 그런 희생을 모르지 않아 조금이라도 빨리 고통을 씻어 드리고자 했지만 서툰 지식과 경험으로 본의 아니게 더 큰 고통을 안겨 드리고 말았다.
의사가 된 후 환자들을 치료할 때마다 나는 어머니의 고통을 떠올린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부작용을 고려하고 효과와 부작용을 먼저 저울질하게 된다. 특히 중한 암을 수술한 후 항암제 치료를 할 때나 수술 후 재발 혹은 전이된 암을 치료하기 위해 독한 항암제를 쓸 때는 더욱 신중해진다. 효과를 볼 확률이 낮으면서 부작용으로 인해 몸이 급격히 쇠약해지거나 면역력이 약해져 폐렴 등의 합병증으로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큰 수술로 인해 신체에 저장되었던 단백질을 많이 소모했거나, 모든 신체 기관이 부실한 노인들은 더욱 그렇다. 청년 시절 내가 벌인 실수로 인한 어머니의 값진 희생이 중견 의사가 된 지금까지도 아들의 실수를 줄이도록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가정의 달 5월에 다시금 어머니의 여러 가지 희생이 떠오른다.
강구정(계명대 동산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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