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난 '천태만상' 신풍경
지난달 말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있는 전셋집의 계약이 끝나 이삿짐을 싼 자영업자 A씨는 최근 한 통의 우편물을 받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우편물에는 전셋집 파손 내역과 함께 1천800만원을 물어내라는 내용증명이 들어 있었다. 미변제 시 전세금에서 차감한다고 했다.
A씨는 "남의 집에 살다 보니 식기세척기 한 번 돌린 적 없이 조심스레 사용했다"며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흠집조차 원상복구하라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전세난이 심해지면서 우리나라 주택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전세시장이 멍들고 있다. 집주인과 세입자끼리 소송까지 벌이는 등 '전세 천태만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이 발간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1년 전국 법원에 접수된 건물 명도'철거 등 소송은 3만3천189건이었으나 2012년 3만3천396건, 2013년 3만4천772건으로 증가세다.
◆'악덕' 집주인
악덕 집주인의 횡포는 전세난에 지친 세입자를 두 번 울리고 있다. 과거 전세 물건이 넘칠 때는 집주인이 천장에 물이 새면 방수공사를 해주고, 바닥장판'싱크대 교체 등 집수리를 해줬지만 전세난이 심해지면서 '나 몰라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어렵게 전셋집을 구한 B씨. 막상 이사를 하려고 꼼꼼히 집안을 살피다 보니 화가 치밀었다. 부엌 싱크대 안엔 시커먼 곰팡이가 피어 있고, 방 구석마다 습기가 가득했으며, 화장실은 군데군데 마감재가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대대적인 내부수리가 필요할 만큼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집주인은 고쳐주기는커녕 '싫으면 말고' 식이었다. B씨는 "전셋집 가진 사람이 갑 중의 갑인데 따져봤자 득될 게 없다.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전세 물량은 턱없이 부족하고 수요는 넘치는 탓에 '이중 계약'을 맺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세입자에게 세를 놓으려고 전세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기도 한다. 악덕 집주인은 세입자가 계약 잔금을 입금하지 못하도록 금융계좌를 일시정지하거나 입금 금지신청을 하는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막무가내 세입자
집주인이 애를 먹는 경우도 허다하다. 세입자가 전세금 일부만 내고 계약 후 잔금 지급을 미루는 경우다. 전세금 3억원짜리 아파트를 계약하면서 계약금 3천만원(10%)만 준 뒤 잔액 2억7천만원 지급을 차일피일 미뤄 결국 집주인이 세입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전세 기간이 끝났는데도 나가지 않는 '버티기형'은 집주인으로서는 가장 힘든 상대다. 명도소송(세입자 등이 월세를 지속적으로 미납하거나 계약기간이 만료됐는데도 나가지 않아 소유자가 해당 부동산을 넘겨 달라고 법원에 제소하는 소송)이 가장 명확한 해결 방안이지만 선뜻 나서지 못한다. 소송 기간이 최소 6개월인 데다 설사 이겨도 밀린 집세 등을 받으려면 별도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입자가 악의적으로 소송 절차를 지연하면 1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또 법원이 집주인에게 세입자를 내쫓아도 된다고 허락해 줘도 강제 집행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부동산 전문 이동우 변호사는 "최근 들어 전세난이 심해지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 집수리로 인한 법적 분쟁도 잦아지는 등 전셋집과 관련된 소송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임상준 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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