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 죽었대" 헛소문, 범인 잡고보니 인근 병원 간호사

입력 2015-05-18 05:00:00

환자 뺏기 전쟁 '살벌·씁쓸' 의료계

대구의 한 산부인과병원은 최근 유명 육아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글 때문에 애를 먹었다. 해당 병원을 지칭하며 '○○병원에서 산모가 죽었다는데 출산이 걱정된다'는 짧은 글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해당 게시물의 조회 수는 1천200건이 넘었고, 댓글도 40개가 달렸다. '의료사고가 빈번한데 개선이 잘 안 된다' '산모가 죽었다니 불안하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심지어 '의료사고 보상금으로 수억원을 줬다'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달렸다.

헛소문에 놀란 병원 측은 부랴부랴 경찰 사이버수사대에 명예훼손으로 수사의뢰를 했다. 추적 끝에 찾아낸 누리꾼은 경쟁 관계에 있던 인근 산부인과병원 간호사였다. 이 병원 관계자는 "손해배상청구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지만 이미 퍼진 소문을 되돌릴 수 없어 난감한 처지"라고 했다.

경기 침체로 환자 수가 줄고 병'의원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근거 없는 비방이나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동업자 의식을 잊은 채 환자 뺏기 경쟁에만 골몰하는 병'의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구 중구보건소에 접수된 의료법 위반 신고 건수는 2012년 49건에서 2013년 54건, 지난해 61건으로 매년 증가세다. 실제 시정명령이나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받은 건수는 7건에 불과해 대부분 감정적인 민원이 많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남구보건소도 2012년 17건이던 신고건수가 2013년 32건으로 급증했고, 지난해에도 31건이 접수됐다. 동구보건소 경우, 불법 의료행위 단속 건수는 2012년 9건에서 지난해 14건으로 증가했다.

대구시내 한 보건소 관계자는 "보건소에 접수되는 불법 의료행위 의심 신고는 감정적이거나 악의적인 신고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최근 개원한 한 동네의원도 요즘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병원 홈페이지에 게재된 내용 중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는 글들을 복사한 뒤 국민권익위원회에 냈기 때문이다. 보건소에서 경고 조치를 받았고, 검찰에 약식기소되면서 마음고생도 심하게 하고 있다.

해당 의원 원장은 "의료법을 위반한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고치는데, 이런 수법의 신고는 의료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며 "다른 병원에서 악의적으로 고발한 것 같다"고 했다.

의료기기를 둘러싼 송사도 일어나고 있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최근 영유아 두상 교정모를 개발했다가 의료법 위반으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경쟁업체인 국내 교정모 제조업체가 해당 교수와 판매업체를 상대로 '무등록 판매'라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해당 교수가 개발한 교정모의 가격은 60만원으로 수입제품의 5분의 1 수준이다. 해당 교수는 "경쟁업체 때문에 2심까지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6시간 이상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면서 "두상 교정은 치료 시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의료윤리상 소송에 걸렸다고 치료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지역 의료계 내부에서는 각종 송사가 난무하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지역 의료계 한 관계자는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과거에는 생각도 하지 않던 경미한 의료법 위반 행위까지 걸고넘어지는 일이 많아졌다"면서 "독자적 의료서비스로 환자들에게 다가가기보다는 경쟁자 흠집 내기에 몰두하는 행태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장성현 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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