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400가구 전기설비 무상 교체 '밝아지는 오지마을'
경상북도는 올 들어 에너지 복지 천국을 만들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우리나라 에너지 생산량의 30%가량을 책임지고 있는 경북이지만, 아직도 도내 곳곳에서는 에너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취약 마을이 많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경북도는 친서민에너지 복지사업(노후 전기시설 개'보수 및 안전점검), 도시가스공급 소외지역 지원사업, 서민층 가스시설 개선지원사업, 가스안전차단기(타이머 콕) 보급사업, 농어촌 LPG 배관망 및 소형저장탱크 보급사업 등 다양한 에너지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50년 만의 새 단장
"아이고, 이거 몇십 년도 더 된 전기선이네요. 이대로 쓰시면 큰일이 납니다. 금방 교체해 드릴게요."
13일 오전 8시 30분, 포항 남구 동해면 흥환1리 이영수(71) 할아버지 집에 주황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전기선과 콘센트 등 양손 가득 들고온 장비들을 내려놓자마자 이내 집안 구석구석을 누비기 시작했다. 서로 역할을 나눠 안방이며, 화장실까지 천장의 백열등을 뜯고 얼기설기 엮어진 전기선들을 걷어내느라 분주했다.
할아버지의 집 마당 한쪽에는 백열등 전선이 피복이 벗겨진 채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비 오는 날이면 종종 차단기가 내려지는 일까지 있었다. 오래된 창고에는 옛날 비닐 피복 전선이 빨랫줄처럼 축 늘어져 있고, 그마저도 자잘한 금들이 있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할아버지는 "한 50년 전에 처음 전기가 들어오고 그다음부터는 별로 손을 댄 곳이 없다"고 했다.
낡은 전기설비가 없어진 자리에는 이들이 가져온 새 전기선과 최신 LED 조명등이 대신 차지했다. 작업을 마치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이 할아버지는 "돈도 안 받고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을 어떻게 보내냐"며 연방 자신의 텃밭에서 키운 나물이며 바다에서 채취한 미역 등을 한아름 안겼다.
작업기사들은 "그냥 아버지 집에 아들이 전기 고치러 왔다고 생각하세요. 늘 전기안전 잊지 마시고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연락해주세요. 언제라도 달려올게요"라고 웃었다.
흥환1리는 호미곶 초입에 위치한 작은 어촌마을이다. 전체 51가구에 100명 정도가 살고 있는데, 대부분 60세를 훌쩍 넘긴 초로의 노인들이다. 이날 이 마을에서는 모두 45가구에서 무료로 낡은 전기설비를 교체해주는 '친서민에너지 복지사업'이 펼쳐졌다.
◆기술자들의 재능기부
'친서민에너지 복지사업'이란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는 홀몸노인이나 다문화가정 등을 찾아가 기술자들이 전기안전점검 및 노후화 설비를 교체해주는 봉사활동을 말한다. 요즘 시대에 전기가 닿지 않는 곳은 없지만, 농'어촌 오지지역일수록 안전설비는 취약하다.
한 전기기술자는 "용량도 맞지 않는 얇은 전화선을 전기선으로 쓰거나 깨진 백열등을 그대로 두는 등 현장을 가보면 너무 심각한 수준이라 놀란다"고 했다.
이전에는 경북도와 각 지자체의 전기직 공무원들이 해당사업을 했지만, 지난 2010년부터는 한국전기공사협회와 한국전력공사 등이 도맡았다.
이날 흥환1리에는 한국전기공사협회 포항시지회 소속 34개 업체에서 60여 명의 전기기술자와 한국전력공사 포항지사 11명의 직원이 함께했다. 이들은 민간 전기기술자가 집안 내 전기설비를 책임지면, 한전 직원들이 외부 진입선과 계량기 등을 교체하는 식의 분업을 이룬다.
경북도에서는 이번 사업을 위해 1억2천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경북도내에만 한 해 평균 600여 가구를 대상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자재비를 마련하는 데에도 충분하지 않은 금액이다. 나머지는 협회 등에서 십시일반 마련한 돈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있다.
특히 전기기술자들의 경우 하루 출장비용이 약 20만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이날만 60명분, 약 1천200만원어치의 '재능기부'가 펼쳐진 셈이다. 천장을 뜯어내거나 아예 새로 전선을 깔아야 하는 일이 많아 봉사활동은 한 지역에서 대개 2, 3일씩 펼쳐지는 것이 보통이다.
봉사활동을 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친서민에너지 복지사업의 참여율은 굉장히 높다. 지난 2010년 군위'영덕'청도 등에서 153가구를 대상으로 실시됐던 사업은 매년 조금씩 늘어 지난해까지 경북 전역에서 2천148가구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올해는 지난달 영주에서 시작해 마지막 울진까지 총 400가구를 대상으로 펼쳐질 예정이다.
장현우 한국전기공사협회 경북도회장은 "지난해 부모 없이 아이들 4명이 사는 집에 간 적이 있는데, 형광등 불 하나 없는 곳에서 쓰레기더미에 파묻혀 살던 모습이 기억난다"면서 "아직도 바람만 불면 전기가 나가거나 스파크가 튀는데도 비용 부담과 무지로 인해 위험에 처한 곳이 많다. 우리 이웃들이 최소한 전기적 문제로 불편을 겪지 않도록 봉사대상을 넓혀가고 싶다"고 말했다.
정욱진 기자 penchok@msnet.co.kr
신동우 기자 sdw@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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