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힘들게 합의를 통해 이루어 놓았던 공무원연금개혁법안이 무산되자,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등 국회가 겉돌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4'29 재보선 패배에 따른 당내 갈등이 내분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고 새누리당은 청와대와의 관계를 두고 잡음이 일고 있다.
공무원연금개혁법안이 처리되지 못하자 이것이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4'11 총선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낼 때 새누리당이 제안해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국회법 개정 법률이다. 이 법은 쟁점법안의 경우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만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해서 단순 과반수를 장악한 여당의 일방적인 날치기 통과를 불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이 법안이 야당에 유리하지만도 않다. 법정 기한 내 예산안 처리를 위해 국회의장에게 권한을 부여했고, 물리력을 통한 의사방해에 대해 엄중한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불만은 새누리당 쪽에서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회선진화법 조항이 다수결 원칙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재적의원 5분의 3이 찬성해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게 한 조항은 미국 상원 의사규칙에도 있다. 미국 상원은 의원들의 끝없는 토론을 종식시키고 표결에 회부하기 위해선 60% 찬성을 거치도록 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양당이 대화와 타협을 한 후에 표결을 할 수밖에 없다. 의회 지도자들이 인내를 갖고 협상을 하도록 해서 단순 과반수 의사결정이 가져올 수 있는 폐단을 최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이 위헌이라는 주장은 대통령제가 '견제와 균형'에 근거하고 있음을 망각한 것이다. 미국 헌법과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게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견제와 균형' 원칙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국회선진화법도 권력분립 원칙에 부합한다고 보아야 한다.
국회선진화법은 새누리당이 제안해서 통과된 법률이기에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다. 2012년 총선 전에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끄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였고, 필자는 비상대책위원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단적인 국정에 이끌려가던 한나라당은 2010년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연거푸 패배함으로써 당 지도부가 와해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구원투수로 나서게 됐다. 한나라당이 그렇게 된 데는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한나라당이 각종 법안과 예산안을 번번이 날치기 통과시킨 것이 크게 작용했다. 이에 원희룡 남경필 등 쇄신파 국회의원들이 미국 상원에서와 같은 의사규칙을 만들자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끌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이 제도를 정치쇄신책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아울러 야당의 의사방해도 금지하는 조항을 추가해서 제안한 것이 국회선진화법이다.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가 국회선진화법을 추진한 데는 정치적 의도도 없지 않았다. 당시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본 사람은 없었다. 새누리당이 135석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에 그런 의석 구도하에서 국회선진화법은 새누리당의 입지를 도와줄 법률이었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해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였다. 만일에 그해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패배한다면 국회선진화법은 새누리당이 갖게 될 마지막 무기였던 셈이다.
국회선진화법을 제안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에는 황우여 부총리, 이주영 의원, 권영세 전 의원이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그리고 사무총장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모두 법률가 출신이고, 필자 역시 법학교수였다. 그 중 어느 누구도 국회선진화법이 위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박근혜 위원장도 그러했다.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자가당착이고 자기부정이다.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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