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시인 박목월(1915~1978)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된다. 근대시 100년, 탄생 100년으로 한국 서정시의 폭과 깊이가 더한 게 사실이다. 소월에서 비롯해 목월에 와서 심화된 향토적 서정과 민요적 리듬의 여운은 그 격조를 더한다. 이는 물론 향가와 시조, 한시 등 옛 시가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목월의 수작들은 정경교융(情景交融)의 묘(妙)가 한데 어우러져 있으며 '달'의 이미지가 다분하다. 그 가운데 '불국사'는 백미에 속한다.
'흰달빛/ 자하문/ 달안개/ 물소리/ 대웅전/ 큰보살/ 바람소리/ 솔소리/ 범영루/ 뜬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달빛/ 자하문/ 바람소리/ 솔소리.'('불국사' 전문)
이 시에서 우리는 목월이 존재와 언어의 일치를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달리 말해 전통 시가의 정서와 음감을 자기화하면서, 그것도 고도로 압축된 언어와 행간 배열, 그리고 명사형 종결어미 처리 앞에서 우리는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흡사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이렇듯 세련된 감각과 언어는 목월 이전 시기에서는 찾기 어려운 특장이다. 탈속의 경지와 선(禪)의 세계, 신라 정신의 재현 또한 물론이다. 게다가 복합 감각의 미적 장치를 통해 불교 사상인 공(空)으로까지 그 밀도를 심화시킨 것은, 시인 정지용이 말했듯 "북의 소월, 남의 목월"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하다. 일제강점기에 경주 건천 모량리에서 출생한 목월은 시인, 교수, 문예지 발행인 등으로 한평생을 살았다. 그만큼 눈동자에 눈물이 그득 고인 시인도 드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목월은 시를 쓰기 위해 하늘에서 쫓겨 내려온 '적선'(謫仙)이자, 슬픈 운명의 바닷새 '신천옹'(信天翁'albatross)이란 생각마저 든다.
저간의 시 세계를 일별해 보면, 시집 '청록집'의 '윤사월' '나그네' '청노루'는 초기 시풍을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동양적 달관과 이상향이 정제된 형식미를 통해 여백의 극치를 드러내고 있다. 고향 경주를 배경으로 탄생된 시집 '산도화' 및 '난, 기타'의 경우 '달' '불국사' '산도화' '하관' '사투리' '사향가' '뻐꾹새'는 신라 천년의 정신과 미학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후기의 역작인 '경상도의 가랑잎'은 사투리가 어떻게 시 속에서 토착 언어와 정서로 형상화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목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어두운 밤 들보를 들고 선 마음, 모량(牟梁)이다. 하나 "서정시가 읽히는 한 박목월은 끝까지 읽힐 것이다."(유종호),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시급하게 재평가가 필요한 시인이다."(이남호), "한국 동시의 현대화에 기여한 시인이다."(정끝별) 등 목월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평가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목월은 자연의 시인이다. 하지만, 생활세계와 종교의 시인, 즉 인간의 운명과 사물의 본성에 관한 깊은 통찰의 시인이란 점은 자칫 놓치기 쉽다.
김동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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