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할부지예, 아부지예, 감사함니더"

입력 2015-05-13 05:00:00

이 철 우
이 철 우

어버이날이 지나갔다. 필자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보다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님과 조부님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아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설문지의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라고 묻는 질문에 필자는 거침없이 '할아버지 이춘중 목사님'이라고 적었으며, 그 대답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조부님은 한학자이셨으며, 독립운동에 깊숙이 참여하셨고, 해방 이후에는 초대 농림부 장관직에 촉탁됐으나 거절하고 본연의 사명인 목사로 평생을 지내셨다. 그리고 일제의 모진 고문 후유증으로 노년을 매우 힘들게 병상에서 보내셨다. 여러 면에서 어른다움의 모델이었던 조부님의 특별한 사랑이 필자가 '생각하며 지도자답게' 살아갈 이상을 품게 된 원천이었음에 감사한다.

선친(先親)께서는 가히 만능이라 생각될 만큼 아주 다재다능한 분이셨다. 법학을 전공하고 토목건설 분야에서 일하다가 늦게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셨다. 영주시 장수면 성곡리(별골짜기)에 시무할 때에는 높은 지대의 물을 막아 수돗물을 먹을 수 있게도 하셨고, 발동기를 돌려 전기를 공급하기도 하셨으며, 늘 청년들에게 꿈을 갖게 하는 지도자셨다. 그래서 원래 아버지는 만능인 줄 알았고 아버지처럼 성장하길 원했었다. 필자가 장성하고 난 뒤 아버지께서 한 번은 "내가 팔방미인이다 보니 내 평생에 큰일을 이루지 못했다"라고 하셨고, "한 가지 특별한 재능을 살려 미래의 큰 일꾼이 되라"며 작곡가의 길을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셨다.

산골 중학교 시절은 지금 작곡가인 필자에게 엄청난 정서적 선물이 됐다. 당시 영주까지 15㎞ 거리를 자전거로 통학했다. 새벽녘 동네 어귀를 나서면 길가에는 상여집이 있고, 이어지는 언덕을 오르면 공동묘지가 펼쳐진다. 그리고 6㎞ 산길은 구석구석 무서운 귀신 이야기가 얽힌 비탈길이었다. 산에서 개 한 마리가 내려와 자전거 앞을 가로질러 달리다가 다시 산으로 사라졌다. 처음에는 "웬 개가 산에서?"라고 생각했지만, 잠시 후 그놈이 늑대인 줄 알고는 감당하기 어려운 소름끼침을 느꼈다. 그리고 보충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 산길 절반이 자전거를 끌고 올라야 하는 오르막이어서 작은 부스럭거림에도 도를 넘는 공포를 경험하곤 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경험들이 내 인생의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다"라며 위로와 격려를 베풀어주신 아버님. 중학생 아들의 이런 마음고생을 아신 것 같다.

그리고 필자의 삶에 중요한 지침을 주신 조부님의 말씀 한 구절. 인간에게는 세 가지 종류의 무식이 있는데, 가장 큰 무식은 '인(人) 무식'이고 둘째는 '사(事) 무식' 그리고 '문(文) 무식'이다. 사람 볼 줄 알고 일에 대해서 알면 글을 몰라도 그 일에 유능한 사람을 쓰면 된다. 상황을 분석하고 잘 처리할 줄 아는 지혜가 있는 사람이 지도자이다. 공부만 하는 사람은 남의 종살이를 하게 된다. 글공부보다 더 중요한 공부에 신경을 써라.

"할부지예, 아부지예, 감사함니더."

(작곡가·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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