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어버이날에 받은 편지

입력 2015-05-12 05:00:00

이 재 순
이 재 순

5월을 감사의 달이라고 하는 것은 감사해야 할 날이 많기 때문이다. 딱히 그날만을 기다려 감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살아가는 일에 바쁘니 그날만이라도 애써 기억하고 감사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8일은 어버이날이다. 평소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부모님이라는 미더움 때문에 잊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어버이날을 전후해서 선물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나는 부러웠다. '좀 더 잘살게 되면 더 잘 해드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바쁘게만 살아왔다. 그러다가 양가 부모님 모두 세상을 뜨셨으니, 그립고 서러운 마음에 울컥 눈물이 솟곤 한다.

나이가 들어도 부모님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되고 싶은가 보다. 힘이 들 때는 부모님께 전화 드려 조언을 여쭙기도 하고, 신나고 좋을 땐 어리광도 부리고 자랑도 하고 싶다. 어려운 일이 닥칠라치면 "어머니! 이럴 땐 어쩌면 좋아요?" 하고 어머니를 부른다. 안 쓰고, 안 사고, 안 버리는 것이 미덕이라던 말씀을 곧이곧대로 듣고 부모님 모시는 일에도 지극히 소박했던 지난날이 후회스럽다. 부모가 되고 아이들이 자라니, 부모님이 하신 말씀 하나도 틀린 게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지난해 어버이날에는 큰딸이 책상, 의자를 선물로 사 주었다. 아직은 자리 잡는다고 힘들 텐데, 왜 이런 선물을 했느냐고 야단은 쳤지만 내심 싫지는 않았다. 식탁 의자와 책상 의자를 겸용해서 쓰는 것이 보기 안되었던지, 책상용 의자를 들여준 것이다. 받아서 고마운 것보다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는 것이 고마웠다. 마음먹고 또박또박 쓴 편지의 한 대목을 옮긴다.

"엄마! 아까워서 못 두르던 머플러도 나에게 선뜻 둘러주시는 엄마, 아까운 것 없이 다 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짜증 내고 화내고 한 것 모두 용서해 주세요. 1인 3역을 해내느라 지칠 때도 자식 일이라면 어떤 고생도 감수해 오신 엄마, 우릴 키우면서 하신 갖은 고생을 어찌 갚을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하늘이 제게 허락한다면 다음 생은 엄마의 남편으로 태어나, 아니면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 엄마를 위해 살아보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읽다가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을 읽어내려 갈 수가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렵기도 했지만 기쁜 순간들이 더 많았다. 자랄 때 준 기쁨은 언제나 가슴을 풋풋하게 해 주었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아이 셋이 한꺼번에 학교를 다녔으니 오죽했으랴. 돈이 없어 쩔쩔맬 때는 이다음에 자라면 백화점을 사다 안기겠다는 풍쟁이 둘째딸이 있어 웃을 수가 있었고….

부모 마음을 이렇게 헤아려 줄 만큼이나 아이들이 자랐다고 생각하니 나의 늙음이야 당연한 것이다. 생전에 손주 사랑이 유별나시던 어머님께서 의젓하게 자라난 손주들을 보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어버이 살아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 송강 정철의 시가 바로 나의 심경인 듯 절절히 가슴에 와 닿는다.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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