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투명성 확보돼야 민주사회?
어디까지 공개돼야 정치가 투명해질까
사생활 투명해질수록 감시사회로 변질
公은 모든 것 알아도 私는 알 수 없어야
민주사회는 분명 투명성을 요구한다. 정치가 모든 사람들이 듣고 지켜보는 공론영역에서 이루어지기보다는 몇몇 사람들만 모이는 막후에서 이루어질수록 부정부패의 가능성은 커진다. 정치판을 발칵 뒤집어 놓은 '성완종 리스트'는 우리의 정치가 여전히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였다. 우리 정치문화의 민낯이라고 할 수 있는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은 소위 리스트로 상징되는 사적인 비밀에 기반을 두고 있으니 사람들이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사회가 투명해질수록 민주화되는 것일까? 국민의 삶과 복지와 관련된 일들이 비밀스러운 골방에 모인 몇몇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민주 문화가 더욱 성숙할 것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민주사회가 요구하는 투명성은 바로 이러한 공적 의사결정 과정의 절차와 내용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공적 문제는 글자 그대로 모든 사람이 듣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알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투명사회'를 실현할 수 있을까? 모든 인간사가 그런 것처럼 이 문제도 동전의 양면과 같은 이중성을 갖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행하는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을 믿을 수 없다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 우리 정치문화가 조금 투명해질까. 누가 누구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얼마나 건넸는지, 어디에서 만나 돈 박스를 정말 전달하였는지, 문제가 되는 그날 어디를 다녀왔는지 등등이 밝혀지면 우리의 정치가 더 투명해질까.
정치인들의 사생활이 한 점의 그늘도 없이 샅샅이 밝혀져야 정치의 투명성이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정치적 투명성'을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아무리 공인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싶은 사생활이 있다. 사생활의 감시와 프라이버시의 통제가 민주적으로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진 모든 말과 행위를 도청하고 감시함으로써 정치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은 전체주의 국가의 특성이다. 오직 전체주의적 독재국가만이 사적 공간의 투명성을 추구할 뿐이다.
투명사회의 이면은 바로 이러한 '감시사회'다. 개인의 삶을 유리알처럼 들여다보고자 하는 사회에서는 정치문화가 결코 건강하게 자라나지 못한다. 진정한 민주사회에서는 공적인 일은 설령 투명하게 공지되더라도, 개인의 사생활은 철저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에 관해 모든 것을 안다면, 그것은 전체주의 사회이다. 이와는 반대로 공적인 것에 관해서는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알더라도 사적인 것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사회가 민주사회이다.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사회가 성숙한 민주사회라면, 사적인 비밀은 민주사회의 전제조건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점점 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영역에서 투명성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성향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CCTV이다. 공공기관에서 범죄예방, 시설관리 및 화재예방, 교통 단속, 교통정보 수집'분석 및 제공 등의 공공목적을 위해 설치하여 운영하는 CCTV가 약 56만대에 이르고, 어린이집과 민간이 설치한 CCTV는 약 360만 대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CCTV에 찍힐까? CCTV에 찍힌 정보들은 어떻게 이용되고 있을까? 이런 질문을 제기하면 사생활 침해를 염려하는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안전을 보호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감시가 과연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만들어 줄까? 정치인들의 말과 행위를 감시하는 개인용 CCTV를 도입하면 우리 정치문화가 성숙해질까? 개인의 사생활이 투명해질수록 오히려 감시사회로 변질될 수 있다는 투명사회의 덫을 생각하면, 우리는 개인의 비밀과 프라이버시를 조금 더 진지하게 보호할 필요가 있다. 공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한다던 CCTV가 어느 날 당신의 사생활을 들여다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진우/포스코교육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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