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은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할 만한 부분이 많은 소설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통합 논술 수업을 하는 데도 아주 적합한 소설이다. 앞부분에서 매점매석으로 돈을 버는 내용은 경제 교과와 통합해서 수업할 수 있고, 뒷부분에서 허구적인 북벌론자인 이완 장군을 꾸짖는 내용은 역사 교과와 통합해서 수업할 수 있는 풍부한 소재를 제공한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허생전에서 제일 주목을 하는 부분은 허생이 자신이 만든 이상적인 사회를 떠나면서 하는 말이다.
"내가 처음에 너희들과 이 섬에 들어올 때엔 먼저 부(富)하게 한 연후에 따로 문자를 만들고 의관(衣冠)을 새로 제정하려 하였더니라. 그런데 땅이 좁고 덕이 없으니, 나는 이제 여기를 떠나련다. 다만, 아이들을 낳거들랑 오른손에 숟가락을 쥐고, 하루라도 먼저 난 사람이 먼저 먹도록 양보케 하여라."
그러면서 허생은 배를 모조리 없애고, 글 아는 사람들은 장래의 화근이라고 말하며 섬에서 데리고 나온다. 문자도 법률도 없는 사회에서 허생이 꼭 필요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 오른손으로 밥을 먹는 것이고, 먼저 태어난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이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라, 착하게 살아라, 이타적인 삶을 살아라와 같은 추상적이면서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좋은 말들도 있고, 출생 신고는 어떻게 하고, 세금은 얼마를 내고, 자치 기구는 어떻게 구성한다는 구체적인 사회 운영의 방법을 제시할 수도 있었는데, 왜 하필 하고많은 일 중에서 오른손으로 밥 먹고, 먼저 태어난 사람이 먼저 먹도록 했을까? 이것에 대한 답은 식당에서 여럿이 밥을 먹을 때 확인할 때가 있다. 좁은 자리에서 밥을 먹을 때 왼손잡이가 옆에 있으면 가끔 팔끼리 부딪치기도 하는데, 이때 허생의 뜻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음식이 일부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안쪽에 있는 사람부터 주거나 연장자부터 먼저 주게 된다. 만약 그런 암묵적인 규칙이 없다면 혼란이 생기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서로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결국 허생이 이야기한 것은 사람들 간의 충돌을 방지하고, 사회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규칙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은 원시적인 인간 사회에서 먼저 태어났다는 것[先生]이 가지고 있는 의미이다. 원시 사회에서 먼저 태어난 사람은 나중에 태어난 사람[後生]이 따르고 본받음으로써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허생이 하루라도 먼저 태어난 사람이 먼저 먹도록 한 것은 먼저 태어난 사람에게 특권을 부여한 것에 참뜻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먼저 태어난 사람들은 나중에 태어난 사람을 이끌고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중에 태어난 사람의 양보를 받을 만큼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 사회는 동물 사회와 달리 환경의 변화를 극복하면서 진보를 이루어가야 하기 때문에 먼저 태어난 사람은 진보의 최전선에 서 있으면서 나중에 태어난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것이다.
현재는 인구가 많아지고, 사회 구조가 원시 시대와 달리 복잡해지고, 먹고사는 것만이 최선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먼저 태어났다고 해서 본받고, 따르고, 그래서 우대를 해 주어야 할 존재는 아닌 시대가 되었다. 그렇지만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최초의 규범은 '선생님'이라는 말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얼마 안 있으면 맞이하게 되는 스승의 날이 직업으로서의 '선생'뿐만 아니라 사회 진보를 이끌며 후생들의 모범이 되는 세상의 모든 선생들을 위한 날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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