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수도 없을 만큼 넘쳐…고만고만한 아이돌에 데면데면
아이돌 스타들은 넘쳐나는 그 숫자만큼이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어감이 좋아 '스타'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그들 중 '스타'라는 말에 걸맞은 인기를 누리는 케이스가 많지도 않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 데뷔한 후 동료의 인기에 편승해 허울뿐인 아이돌 가수로 살아가다 잊히는 경우가 허다한 게 이 세계의 냉혹한 현실이다. 특히나 K-POP 인기의 하락과 함께 '아이돌의 시대도 저물어간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상황. 한국 아이돌 문화의 현재를 살펴보고, 이 생태에 따라 바뀌고 있는 아이돌 스타들의 적응방식을 알아봤다.
◆한계점에 도달한 한국 아이돌 문화
SM과 YG, JYP 등 거대 기획사를 중심으로 발전한 아이돌 양산 시스템은 최근 2, 3년간 다방면에 걸쳐 놀라운 성과를 냈다. 일일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아이돌 그룹을 세상에 내보내 음악시장의 판도를 바꿨고, 그중 뛰어난 실력파를 발굴하고 키워내 '아이돌의 수준'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꿨다. 그리고 아시아를 넘어 남미 지역과 유럽까지 넘나들며 'K-POP 열기'를 전파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소위 '아이돌 문화의 부흥'이라는 문구로 이해할 만한 이 시기의 출발점은 대략 2007년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앞서 H.O.T와 젝스키스 및 신화 등 1세대 아이돌 그룹의 전성시대가 끝나고 동방신기와 SS501 등 2세대 아이돌 그룹이 1세대의 인기를 이어받은 게 2004년에서 2005년 즈음이다. 이어 소녀시대, 카라가 데뷔하고 원더걸스가 '텔미'를, 빅뱅이 '거짓말'을 내놓은 2007년에 이르러 한국 아이돌 그룹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이듬해인 2008년에는 원더걸스가 '노바디'를 빅히트시키고 유키스와 샤이니, 2AM과 2PM이 나오면서 비로소 아이돌 전성시대가 열렸다. 2009년에는 소녀시대가 '지'로 신드롬을 형성했다. 같은 해에 레인보우, 시크릿, 엠블랙, 비스트, 에프엑스, 티아라, 포미닛, 투애니원, 애프터스쿨 등 인기 아이돌 그룹이 봇물 터지듯 나와 데뷔 신고식을 치렀다.
이후로도 매년 수도 없이 많은 아이돌 그룹이 등장했다. 철저한 트레이닝과 기획사의 능력, 그리고 운이 제대로 맞아떨어졌을 때 그 팀은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하면 외면당했다. 또한, 공급량이 많았던 만큼 갖은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각 아이돌 그룹의 이미지와 음악 및 공연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상호 유사성이다. 전반적으로 각 기획사들이 내놓은 아이돌 그룹이 먼저 세상에 나와 전성기를 누리고 사라졌던 선배 그룹을 본보기로 삼았기 때문에 유사한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유사성에 '개성과 실력'을 얹지 못하면 그 팀은 진정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 어설픈 기획력으로 '반짝인기'를 노렸던 그룹은 결국 치열한 경쟁 속에서 패배를 맛보고 조용히 사라졌다.
그렇다고 그저 '개성과 실력'을 추구하기엔 현 아이돌 그룹의 퍼포먼스와 활동방식이 고착화돼 '새로움' 자체를 보여준다는 게 쉽지 않다는 문제점도 있다. 대형 기획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아이돌 그룹 양산 시스템의 테두리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 팀의 생존율 역시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개성 강하고 실력 좋은 팀을 만들어 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안전성'을 고려해 기존 인기 아이돌 그룹의 장점을 차용한 신인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요계에는 외모부터 시작해 댄스, 음악 콘셉트까지 흡사한 그룹이 넘쳐나게 됐다. 심지어는 아예 콘셉트나 음악 자체를 대놓고 베껴 쓰면서 교묘하게 표절 논란만 피해가는 예도 있다. 들어간 투자기간 및 비용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상업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이 한국 아이돌 음악의 성장을 막는 요인이 된 셈이다. 권력과 자본을 갖춘 몇 개 대형기획사 외에는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낼 수도 없는 현실 속에서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비슷한 팀이 속속 시장에 나오는 건 한편으로 당연한 일이다.
◆짧은 생명력, 멤버 개인 고민 커져
비슷비슷한 아이돌 그룹의 등장에 대중도 피로를 느끼는 지경까지 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돌 그룹 간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지고 기획사와 아이돌 그룹 멤버들도 생명연장을 위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아이돌 그룹의 유닛과 솔로활동, 연기 및 예능 활동 병행도 멤버 개인의 역량을 알려 생명력을 얻고 팀 전체의 상업적인 활로까지 개척하자는 의미에서 시작됐다. 과거에는 인기있는 멤버 한 명이 솔로로 전향하면 아예 팀 전체가 힘을 잃고 해산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룹을 유지하면서 멤버 개인이 개성과 능력을 보여줄 수 있게 다양한 활동을 보장해 일석이조의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실제로 개별 활동으로 얻은 멤버의 인기는 팀 전체의 인지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아이돌 스타들의 연기활동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했다. 그룹 활동으로 얻은 인기에 기대지 않고 탄탄한 연기력과 발전 가능성을 제시한 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얻어낸 결과다. JYJ 박유천, 제국의 아이들 임시완, 애프터스쿨 유이, 빅뱅 탑, 비스트 윤두준, 에이핑크 정은지 등이 대표적인 예다.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 출연 중인 이준은 처음부터 연기자를 꿈꾸며 연예계로 들어왔다가 그룹 엠블랙의 멤버로 데뷔하게 된 인물이다. 본격 연기활동을 위해 팀 탈퇴를 선언하고 한 분야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룹 활동의 장점을 살려 본인의 활로를 개척한 예다.
예능방면으로 진출하는 아이돌 스타도 많다. 슈퍼주니어의 김희철, M.I.B의 강남 등이 예능계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긍정적인 케이스다. 최근 '무한도전'의 새 멤버로 뽑혀 화제가 된 황광희 역시 제국의 아이들 멤버다. 황광희의 경우 처음부터 노래나 댄스실력을 내세우기보다 웃음을 주며 예능에 주력했다. 그룹활동으로 데뷔했지만 애초 지향점이 달랐다는 말이다. 최근에는 EXID 하니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뛰어난 외국어 및 수학 실력 등을 뽐내며 주목받고 있다.
각 그룹의 실력파 멤버들은 결국 음악성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S.E.S의 바다와 핑클의 옥주현이 지금까지 뮤지컬 무대 및 가요계를 오가며 가창력을 뽐내고 있으며 빅뱅의 지드래곤은 작곡 및 프로듀싱 능력까지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이돌 그룹 멤버 개개인의 사고방식도 과거와 달라졌다. 아이돌 그룹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초창기만 해도 어린 나이에 얻은 인기 때문에 그저 눈앞의 화려함만 보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다 팀 해체 이후 갈 곳을 잃고 방황하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눈에 띄었다. 젝스키스 해체 이후 각종 사기사건에 휩싸여 곤욕을 치른 강성훈, 또 군생활에 적응 못 하고 탈영해 문제를 일으켰던 또 다른 멤버 이재진이 대표적인 예다.
사실 이 시기 아이돌 스타들에게는 선배들이 남긴 선례가 드물었다. 그들 스스로 아이돌 문화의 태생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그룹이 생명을 다했을 때 멤버 개인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지 가이드라인이 없었던 것. 하지만 지금 활동 중인 후배들은 다르다. 장기간의 트레이닝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눈을 갖췄고, 선배들과 주변 동료들의 케이스를 바탕으로 자신의 나아갈 길을 미리 찾아보는 준비정신까지 가지게 됐다.
어차피 음악성으로 정면승부할 수 없을 경우 아예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과거와 달리 그룹 해체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이들이 많다. '영원한 인기'가 아니라는, 혹은 팀의 인기가 본인에게 돌아오지는 않을 거라는 냉정한 판단을 스무 살 전후의 어린 아이돌 스타들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환경의 변화에 따른 진화다.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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