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불효자가 되자

입력 2015-05-07 05:00:00

장인 장모를 뵈러 갈 때 '집'으로 가지 않게 된 게 1년이 다 되어간다. 집이 아닌 요양병원으로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장모님은 치매 증상이 있어 입원하신 지가 좀 되었고, 장모님을 따라 곧 장인도 같은 병원에 입원해 생활하신다.

요양병원에 들어가 보면 참 기가 막히는 광경이 펼쳐진다. 병실마다 가득가득한 어르신들이 침대에 아무런 기력도 없이 줄을 지어 누워 계시는 광경은 마치 전장의 야전병원 같기도 해서 사이를 지나다니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당신 혼자서는 기동조차 못 하는 어르신들이 눈만 뜬 채 누워 있는 모습에, 젊은 우리들의 머지않은 노후가 오버랩되는 것 같아 착잡해지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다.

100세 시대가 온 지 한참이나 되었다. 지난 2일 자 매일신문 1면을 보면 대구경북에만도 100세가 넘는 어르신들이 1천200명에 가깝다. 100세는 아니더라도 90세 이상 어르신은 이보다 훨씬 많아 1만7천여 명이나 된다. 앞으로 그 수는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10~20년 전만 하더라도 100세를 넘겨 사는 노인들이 매우 드물어 신문에 보도되기까지 한 기억이 나는데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개중에는 여전히 건강한 삶을 영위하며 젊은이 못지않은 노익장을 과시하는 분들도 있지만, 내 장인 장모처럼 병원에서 노년을 보내야 하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장수만으로는 부족한 시대이다. 병원에서 연명치료를 받으며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그것을 장수의 축복이라 할 수 있을까. 오래 살되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많은 노인들이 병원과 약에 의지해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대구경북 65세 이상 노인들이 병원에서 쓰는 진료비가 지난해 말 2조1천211억원에 달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에도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5년 뒤인 2020년엔 우리 국민 전체 진료비의 45.6%를 노인 진료비가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건강한 노년을 보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다. 일하는 노년은 그렇지 못한 어른들에 비해 훨씬 건강한 삶을 유지한다. 일하는 노인이 더 건강하고 날씬하다(비만도가 낮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병원에 오시기 전 장인은 매일 파지와 고철을 주우러 다니셨다. 팔순의 나이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동네를 다니시며 일을 하시고 친구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셨다. 물때가 되면 바닷가 당신의 조개밭에 나가 조개 농사를 짓고, 낚시를 하거나 갯지렁이를 잡아다가 낚시점에 파는 일로 소일하셨다. 그런데 당신의 효자 효녀 자식들이 그걸 봉쇄해버렸다. 노구에 위험하고 힘드시니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제발 집 안에서만 편안하게 계시라고. 그런데 그때부터 두 노인의 건강에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온종일 집에만 계시다 보니 결국에는 다리 힘이 빠지고 우울증과 치매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 어머니는 일흔 중반을 넘기셨지만 열심히 몸을 움직이신다. 유치원에서 이야기 할머니 활동도 하셨고, 당신보다 더 연세가 많은 할머니를 위한 돌보미 일도 하신다. 자원봉사 시간이 몇백 시간이나 된다고 자랑하시기도 했다.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시는 건 당연히 건강이 따라주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그 반대의 영향도 받으실 것이다.

자식들치고 부모님이 건강하게 오래 사시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불효자가 되어보길 권한다. 어른들이 바깥에서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도록 호미를 들려 드리고, 열심히 파지 주우시라고 유모차라도 마련해 드려보자. 효도한답시고 아들들이 집 안에서 아무 일도 못하게 하면 병이 난다. 사회적으로도 어르신을 위한 일자리를 더욱 많이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노력에 드는 비용이 노인 의료비 등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길이 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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