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시 vs 예안시
안동'예천에 들어서는 '경북도청 신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줄 신도시 새 이름 결정이 20일로 미뤄졌다. 경북도는 당초 지난달 29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모한 명칭을 심사, 신도시 이름을 정하기로 했으나 심도있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와 결정을 연기했다.
이날 도청이전 신도시 명칭제정위원회는 ▷동천(안동의 '동'과 예천의 '천') ▷예안(예천의 '예'와 안동의 '안') ▷퇴계(퇴계 이황의 호) ▷풍호(안동 풍천면 '풍'과 예천 호명면 '호') ▷해올(해가 떠오르다의 순수우리말) 등 5개를 최종 후보작으로 올렸다.
안동'예천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신도시 이름짓기에서부터 엇갈린 반응을 보여온 두 지역은 신도시 이름 선호에서도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신도시 이름짓기, "타 도시와 차별화-지역 갈등 초래"
그동안 경북도는 도청이전 신도시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앞으로 행정, 전통문화, 자연이 어우러진 자족도시 건설을 위해서는 다른 신도시와 차별화된 고유의 브랜드 명칭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전 국민을 상대로 이름 공모를 진행했다.
지난달 2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 공모에는 848명이 참가, 모두 457개(명칭 다수 중복)의 이름을 제안했다. 이를 도청이전추진본부 내부 심사를 거쳐 25개 명칭으로 압축하고, 또다시 지난달 16일 신도시건설자문위원회의 자문'의견을 통해 10개로 줄였다.
이 과정에서 안동과 예천 지역 반응은 엇갈렸다. 안동에서는 "신도시 이름 짓기는 안동'예천의 갈등만을 초래하고, 나아가 신도시의 독립된 행정구역 편제 등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반대여론이 강했다. 이와 달리 예천은 "안동'예천 행정통합에 앞서 신도시 이름 짓기를 통해 도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찬성 여론이 강했다.
안동시의회 권기탁 의원은 지난달 2일 열린 임시회 5분 발언을 통해 "도청 신도시에 또 다른 명칭을 정하는 것은 이해 당사자인 시'군민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협력과 화해분위기를 해쳐 새로운 갈등 양상만 초래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신도시 입주민과 기관'단체들은 "전국 대부분 신도시가 고유의 이름으로 알려지고, 도시 브랜드를 통한 경쟁력을 갖추는 상황에서 신도시 이름짓기는 늦은 감이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경북도 관계자는 "전국 대다수 신도시가 자기 이름을 갖고, 각종 홍보와 신도시 경쟁력에 활용하고 있다. 안동'예천 주민들이 찬성하지 않으면 신도시가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없다"고 했다.
◆안동은 퇴계시, "청렴한 삶'경의 실천, 웅도 경북 정체성과 상통"
5개의 후보작 명칭을 둘러싸고 안동'예천지역은 또 엇갈린 반응이다. 안동은 대체로 '동천시'와 '퇴계시'를 선호한 반면, 예천지역은 '예안시'를 선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시 명칭제정위원회 논의 과정에서도 행정복합도시 '세종시'에 이어 우리나라 최고의 성리학자인 이황의 호를 딴 퇴계시가 1순위로, 예천과 안동의 첫 글자를 딴 예안시가 2순위였으나 안동과 예천 지역 간 이견 등으로 결정을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안동지역 유림단체 한 관계자는 "퇴계 선생은 안동지역 만의 인물이 아니다. 영남은 물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학자로 추앙받고 있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청렴한 삶을 살면서도, '경'을 철학으로 살았던 선생과 웅도 경북의 정체성이 일맥상통해 가장 적합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위인들의 이름을 딴 이름짓기 사업이 대세다. 설명을 들어야 이해할 수 있는 '남악', '내포'와는 달리 '세종시'처럼 한번 들으면 이해할 수 있는 퇴계시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했다.
하지만 퇴계시 경우, 진성 이씨라는 특정 문중에 치우쳐 자칫 문중 간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안동지역에서는 아직도 신도시 이름짓기 사업 자체에 부정적인 분위기가 많은 상태다. 자칫 이름짓기 논란 속에 안동'예천 간 갈등이 깊어지면 상생협력과 행정통합 논의 등이 물 건너 가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는 반응도 있다.
◆예천은 예안시, "역사성과 상징성, 안동의 양보 있어야"
예천에서는 예안시로 결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다. 안동'예천의 역사성과 도청 신도시라는 상징성 등을 고려하고, 큰집 격인 안동시가 통 큰 양보로 예안시를 밀어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예안 신도시는 예천과 안동의 첫 글자를 딴 의미도 있지만 유교의 본향인 안동시 예안'도산면 일대 옛 행정지명이 '예안현'이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두 지역 간 역사성과 유교를 중시하는 경북도의 상징성을 함께 지녔다는 이유다.
예천 주민들은 "경기도 동두천의 줄임말 같은 '동천시'보다는 두 지역 간 역사성이 있는 예안시가 새로운 신도시 이름으로 적합하다"며 "형님도시 안동이 예안시로 힘을 실어 새 천 년 미래를 함께 준비해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천의 한 정치권 인사는 "안동과 예천이 손을 맞잡고 함께 도청유치에 뛰어들었고, 유치에 성공했을 때 공공기관과 행정기관 입주와 신도시 조성 등에 대한 발전적 논의 과정에서 예안시가 좋을 것이라는 의견들이 있었다"고 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도청이전 신도시 새 이름 결정은 300만 도민이 이용하는 경북의 랜드마크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두 지역 간 의견 일치가 쉽지 않다"며 "최대한 주민의 합의를 끌어내고 역사, 전통 등을 잘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안동 엄재진 기자 2000jin@msnet.co.kr
예천 권오석 기자 stone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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