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나는 빚에 홀로 있을 손자 생각에 눈물만…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김명옥(가명'66'여) 씨의 눈에는 초점이 없다. 마치 모든 걸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 아픈 명옥 씨를 돌봐줄 사람도,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줄 사람도 그의 곁에는 없다. 멍하니 있던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아픈 할머니 때문에 혼자서 밥을 챙겨 먹고 학교에 다니고 있을 손자 생각이 나서다.
◆남편의 사업 실패와 함께 무너진 인생
명옥 씨의 젊은 시절은 남부러울 것 없이 화려하기만 했다. 큰 사업을 하는 남편 덕에 넓은 집에서 부족함 없이 살아왔고, 서른이 넘어 금쪽같은 딸까지 얻으면서 명옥 씨는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남편의 사업이 기울면서 화려했던 시절은 멀어져 갔다. 집 안 곳곳에는 압류 딱지가 붙었고 가족들은 빚 독촉에 시달렸다. 남편은 명옥 씨와의 이혼을 선택했다.
남편의 사업 실패 이후 명옥 씨도 아픔의 세월을 보냈다. 그의 옆에는 어린 딸이 울고 있었지만 돌볼 수 없었다. 우울증이 명옥 씨를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우울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던 명옥 씨는 믿음직스러운 한 남자를 만나게 됐고, 다시 한 번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잘 살아보겠다며 힘을 냈다. 하지만 재혼한 남편의 사업마저 실패하면서 명옥 씨와 딸은 행복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팔자가 어찌나 기구한지 두 번째 남편은 사업 실패 이후 노숙자로 전락하는 신세까지 됐어요. 그때부터 우울증이 더 심해지고 부끄러워 삶을 포기하려는 마음마저 먹었습니다."
딸이 고등학생이 됐을 무렵에도 명옥 씨는 여전히 우울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어느 날 고등학생 딸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명옥 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딸과 함께 손자를 키우며 잘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다행히 손자는 건강하게 잘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딸은 엄마와 닮아 있었다. 항상 우울함에 갇혀 지내며 아이를 돌보는 일도 소홀히 했다. "제가 잘못 키운 탓이죠.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우울증을 앓아서 항상 그런 모습만 보여 왔으니…."
◆암 말기의 할머니, 혼자 지내야 할 손자
3년 전쯤 명옥 씨는 또 한 번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딸이 손자를 데리고 집을 떠나 버린 것이다. 아픈 마음만큼 명옥 씨의 몸도 급격히 나빠졌다. 허리디스크와 관절염 등 각종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우울증도 다시 심해졌다.
그러던 지난해 여름, 명옥 씨는 딸의 친구로부터 충격적인 연락을 받았다. 딸이 손자를 버리고 달아나 버렸다는 연락이었다. 급히 달려간 명옥 씨는 손자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이미 석 달 전, 딸은 친구의 집에 손자를 맡겨두고 자취를 감춰버렸다. 초등학생인 손자는 석 달째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남의 집에서 눈칫밥만 먹고 있었다. 그 길로 명옥 씨는 손자를 데려와 돌보기 시작했다. "손자를 돌보면서 잘 버텨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몸이 점점 아프기 시작하더니…."
손자를 데려오고 몇 달 뒤 병원을 찾은 명옥 씨는 또 한 번 무너졌다. 대장암의 일종인 결장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전 같았으면 포기했을 명옥 씨지만 돌봐줄 사람 하나 없는 손자를 생각하며 힘든 방사선 치료를 견뎌냈다. 하지만 치료 후에도 명옥 씨의 몸에서는 암 덩어리가 자라났다. 암 덩어리와 함께 빚도 불어났다.
다시 항암치료에 들어가야 하지만 명옥 씨는 계속해서 망설였다. 치료비 때문에 자꾸만 빚이 늘어나고, 명옥 씨가 병원에 갈 때면 혼자 지내야 하는 손자 걱정이 앞서서다. 얼마 전 더는 버틸 수 없어 병원에 입원한 명옥 씨.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이 상황에 그는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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