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보조사

입력 2015-05-04 05:00:00

주 업무가 고3 담임이다 보니 나는 대학교수들과 같이 일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도대체' 대학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학생부 전형 학생을 선발하는지에 대해 물어본다.('도대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른 말은 그만두고 요점만 말하자면' '전혀 알지 못하거나 아주 궁금하여 묻는 것인데'의 의미가 나오는데 꼭 그런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여기에 대한 글은 나중에) 대학교수들의 의견은 대체로 성적을 많이 보는데, 때로는 생활기록부와 추천서에 적힌 말들을 통해 고등학교 교사들과 보이지 않는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NEIS 학부모 서비스를 통해 담임이 학생부에 어떤 내용을 적는지 학부모가 볼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신념에 찬 초보나 고집불통이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나쁜 말을 적지는 않는다. 학생들과 하루 종일 붙어서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학생의 모든 면을 보았다고 확신을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나쁜 말을 적어 주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교수들은 학생부에 적힌 행간을 보며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교수들이 이야기하는 학생부와 추천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청소 이야기라고 한다. 교수들의 이야기 중 흥미로운 것은 교사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청소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라는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써 놓은 학생들은 실제로 선발해서 대학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면 천재적인 재능은 부족한 경우가 있지만 심성이 착하고, 성실한 학생들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학교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의 인성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바로 청소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이익에 철저히 계산적인 학생들이나, 엄마의 철저한 관리에 의해 만들어진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가는 스펙이라고 하는 것 외에는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기가 청소 당번일 때 힘든 것은 하지 않고 남들이 하는 것에 묻어가려는 경우가 있다. 이런 학생들의 경우 뭐라고 하지는 못하지만 교사와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공감관계(심리학에서 '래포'라고 많이 이야기를 하지만 표준어는 '라포르'이다)가 잘 형성되지 않는다. 이런 학생들이 학생회장이나 학급회장인 경우 교사들은 '다른 학생들을 이끌어 가고 통솔해 가는 리더십이 있음'이라고 하지 않고 '리더십은 있음'이라고 적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만약 학급회장을 하면서도 겸손하면서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학생이라면 '리더십이 있고, 어떤 어떤 일을 할 때 어떠 어떠하게 일을 할 정도로 솔선수범하는 모범적인 학생임'이라는 식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많은 말을 적어준다. 대학교수들은 그런 조사 하나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살아있는 이야기에서 학생의 인성적인 면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말에서 주격 조사 '이'와 '은', '만', '도'와 같은 특별한 의미를 더해주는 보조사는 모국어 화자가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의미의 차이가 있다. '리더십이 있다'고 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지만 '리더십은 있다'고 하면 다른 무언가 대조되는 상황을 담고 있는 것이 된다. 이를테면 자기가 앞에 나서지 않는 상황이 되면 비협조적인, 한마디로 팔로어십이 부족하다는 것과 같은 대조적인 상황이 있을 때 성립되는 것이다. '리더십도 있음'이라고 하면 다른 무언가 잘하는 능력이 있고, 부가적으로 리더십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리더십만 있음'이라는 표현은 다른 것은 하나도 잘하는 것이 없고 남을 통솔하는 것만 잘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성립하기 어려운 말이다.(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을 따르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사 하나 차이로 그것이 표현하는 문장의 의미는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데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이런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어의 매력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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