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범죄와의 전쟁

입력 2015-05-02 05:00:00

경북대 고고인류학과·경북대 대학원 영문학 석사
경북대 고고인류학과·경북대 대학원 영문학 석사

요즘 대세 감독이라고 하면 윤종빈을 많이들 떠올린다. 최근작 '군도'가 흥행, 비평 양면에서 엇갈린 평가를 받은 탓에 주춤한 모양새이기는 하나 여전히 그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충무로의 대표 주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그는 지난 2011년 자신의 최고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영화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을 좀 살펴보기로 하자.

주인공 A(최민식 분)는 학벌도, 집안도, 재산도 변변치 않은 말단 공무원이다. 가진 거라고는 박봉의 공직뿐인 그는 비리 사건에 연루되며 그 자리에서마저 쫓겨나기에 이른다. 먹고살기조차 어려워진 그는 우연한 계기로 입수한 마약 가방을 팔기 위해 조직폭력배 B(하정우 분)와 접촉하게 되고,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B가 자신의 먼 손아래 친척뻘임을 알게 된다.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끈 떨어진 신세였던 A는 필사적으로 그와 세상을 다시 연결해 줄 그 B라는 실낱을 움켜잡는다. B의 아버지를 찾아가 족보까지 들먹이는 소동 끝에 폭력 조직의 일원이 된 그는, 다시 얻게 된 세상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힘 있는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원래 A는 혈연도 지연도 학연도 없는 사람이기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은 결국 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결국 A는 모든 사람에게 돈을 가져다주면서 친분을 사는 입장이 됐고, 그러나 그는 그런 교류나마 만족해하며 권력자들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수첩을 신줏단지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다닌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정권의 '부패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아, 잠깐 금방 필자가 '부패와의 전쟁'이라고 했나? 잠시 헷갈린 필자의 실수다. 이 영화의 제목은 '범죄와의 전쟁'이지. 어쨌든 그 무슨 전쟁은 시작되고, 만만한 A는 '첫빠따'로 구속이 된다. 어찌어찌 잠시 풀려난 A는 천금을 주고 마련한 전화번호부를 펼쳐들고 스스로 구제에 나선다. 그러나 전화기 반대편에서 돌아오는 반응은 냉랭하다. 이번 건은 A가 친분을 쌓은 자들 선에서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를 넘어서는 사안인 탓이다. 또한 돈을 받은 자들의 양심불량도 한몫한다. 원래 돈을 받을 때까지는 사람이 좋아 보여도, 일단 받고 나면 잘 안 만나 주고, 전화도 잘 안 받고 뭐 그런 법이지 않나. 결국 A는 전화기 앞에서 좌절한다. 혼맥도 없이, 학교 선후배 하나 없이 자신의 두 손만으로 성공했건만, 결국 여기에서 버려진 것이다.

A는 인간적인 배신감에 치를 떤다. 그리고 위협이 가족의 안전에까지 뻗쳐온 것에 대해 진심으로 분노한다. 그리고 그는 그 모든 상황을 한꺼번에 뒤집을 수 있는 반전을 기획한다. 요 다음의 이야기는 영화를 안 보신 분들에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화의 줄거리 소개는 여기에서 마치도록 하자. 문제는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내가 볼 때, 그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 사회에서 왕따가 되지 않으려면 우선 부모를 잘 만날 것. 다음은 좋은 학교에 갈 것. 그다음은 힘 있는 집안과 결혼할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돈을 준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구해줄 필요까지는 없으되, 그 사람이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끼지 않도록 잘 위로해 줄 것.

둘째, 영화감독이나 소설가 등이 내놓은 작품을 한낱 시간 보내는 이야기 정도로 경시하지 말 것.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야기 속에는 어떤 '인간사의 보편'이 있어서, 때로 2011년에 나온 1990년의 이야기가 2015년의 선견지명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셋째, 이 영화 같은 이야기가 혹 실제로 벌어진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는 선거의 결과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 그러니 앞으로도 마음 놓고 편안하게 돈을 주고받으실 것.

박지형/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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