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채보상운동 정신 세계화에 힘 모으자

입력 2015-05-02 05:00:00

대구에서 일어난 구한말 경제주권운동

세계와 공유하는 문화유산으로 삼아야

국채보상운동은 구한말인 1907년 대구에서 비롯된 경제주권 회복운동이다. 일제의 경제 침탈에 맞서 요원의 불길처럼 거국적으로 퍼져 나간 주권수호운동이기도 하다.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의 애국계몽단체인 광문회를 이끌던 김광제'서상돈 선생 등이 불을 지폈다. '일본에서 들여온 외채 1천300만원을 갚는 일에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다'는 호소와 국민적 보상 제의가 전국 방방곡곡으로 확산한 것이다.

당시 국채보상운동에는 상공인과 서민은 물론 기생들까지 합세하며, 남자는 담배를 끊고 여성은 머리채를 자르고 패물을 내놓았다. 고종 황제도 금연으로 동참했으며, 고종의 밀사인 이준 열사도 적극 가담했다. 그래서 국채보상운동은 나랏빚을 갚는 데 국민이 스스로 나선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운동이요, 부녀자들이 대거 참여한 최초의 여성운동으로 평가된다.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되새기고, 당시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려는 사업을 그 발원지인 대구에서 추진하고 있다.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가 세계의 귀중한 기록물을 보존'활용하기 위해 선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훈민정음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현대의 새마을운동 기록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11건을 등재해 아시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번에 등재를 추진하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주요한 문건만 150여 건에 이른다고 한다. 국채보상운동에 동참을 요청하는 취지서와 권고문, 통문, 편지, 신문 논설과 성금을 낸 사람과 액수를 적은 성책(誠冊) 등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추진위는 등재 가능성을 자신하고 있다. 문화재청의 등재 대상 선정 기준인 진정성과 독창성, 역사성을 확보하고 있어서다. 또,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금 모으기 운동 등으로 그 정신적 가치를 충분히 입증했다는 것도 장점이다.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은 우리의 고귀한 문화유산을 인류 공동의 것으로 삼아 세계인과 공감하자는 것이다. 의병의 역사에서 보듯 국난 극복에 민중이 솔선수범한 숭고한 정신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로 국채보상운동에 이어 현대의 IMF 경제위기 때도 그 생명력의 실천적 부활을 증명했다.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다면 우리에게는 후세에 길이 남을 정신적 자산이 될 것이다. 또한 그것은 대구의 커다란 자긍심이자 대구를 세계적인 문화유산 도시로 자연스럽게 각인시키는 계기도 된다. 이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을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만드는 일에 대구의 역량을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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